잘나가던 하버드 출신 변호사, 노숙인 전락…기구한 사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20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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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겐 묵비권이 있습니다.”

“나도 압니다. 변호사니까요.”

4월 30일 미국 워싱턴 고등법원 재판장에서 토머스 모틀리 판사가 불법 노숙 혐의를 받은 알프레드 호스텔(68) 씨에게 ‘미란다 원칙’을 알려주자 대뜸 이런 답이 돌아왔다. 포스텔 씨는 “하버드 로스쿨을 1979년에 졸업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모틀리 판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당신을 압니다. 나도 그해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으니까요”라고 말한 뒤 이 ‘동기동창’에게 2개월 간 구치소에 머물 것을 선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구치소에서 나온 포스텔 씨가 다시 워싱턴 길거리 생활을 시작했다며 주변 인물 인터뷰를 통해 ‘하버드 출신 노숙자’의 기구한 인생을 14일 소개했다.

흑인인 포스텔 씨는 집안이 넉넉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공부에 재능을 보여 워싱턴 스트레이어 칼리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땄고 이어 매릴랜드대에서 경제학,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학위만 법학, 경제학, 회계학 등 3개를 가진 그는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손꼽히는 학생으로 통했다. 동기 중에는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 등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많았지만 포스텔 씨도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고 동기생 마빈 배그웰 씨가 말했다.

그는 하버드 졸업 직후인 1980년 ‘쇼 피트맨 포츠 앤 트로브리지’라는 유명 로펌에 변호사로 취직했다. 당시 그 로펌의 유일한 흑인 변호사였던 그는 공인회계사 경력을 활용해 세무 관련 업무를 다뤘고 당시로는 거액인 연봉 5만 달러를 받았다. 그는 주말에는 워싱턴 포토맥강에서 개인 요트를 탈 정도로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40대 초반 분명치 않은 이유로 로펌에서 쫓겨났고 그 충격으로 모든 것을 잃으며 나락에 빠졌다. 집에서 TV를 보다가 갑자기 길거리에서 몇 시간을 방황하기 일쑤였고 결국 지금의 정신분열증 증세를 보이며 길거리를 전전하게 됐다.

노숙자들의 정신질환 치료 기관인 ‘그린 도어’의 리처드 드보 실장은 “변호사로 부와 명예를 누리다 갑자기 모든 것을 잃게 됐고 결국 정신분열증으로 이어졌다”며 성공만을 향해 내달리는 미 상류 사회의 또 다른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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