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협상 타결, 하메네이에겐 독이 든 성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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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강경파 설득 시험대 올라”… 아직 공식입장 안 내놓고 침묵
반발하는 지지층 달래기 위해… 反이스라엘 전선 강화 가능성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사진)가 이란 핵 협상 잠정 타결을 ‘독이 든 성배’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핵 협상을 지지하는 중도 개혁파만 두둔하다가는 핵심 지지층인 보수 강경파의 불만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등 주요 6개국과 이란 간에 이뤄진 2일 합의안대로 6월까지 최종 합의가 이뤄지면 하메네이가 중대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5일 전망했다.

군 통수권뿐만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최고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이란의 최고 통치권자인 하메네이는 이번 협상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핵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협상팀에 힘을 실어 주면서 핵심 지지층인 보수 강경파의 반대를 잠재워 왔다.

그런데 협상 결과 이란의 핵 개발 능력이 상당 부분 위축되면서 이란에 불리한 협상 결과라는 비판이 보수파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면서 하메네이는 앞으로 이들을 달래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서방과 대립해 온 하메네이는 협상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중도 개혁 노선을 포용하거나 친미(親美) 노선을 지지할 정도는 아니라고 FT는 분석했다.

하메네이는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의 중단을 선언한 초대 최고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와도 비교된다. 당시 호메이니는 8년간 전쟁이 이어지면서 국민의 고통이 커지자 정전을 선언하면서 “독을 마시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고통”이라고 말했다. 1989년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최고 지도자에 오른 하메네이 역시 경제적 어려움과 고립으로부터 이란을 구해 내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메네이는 아직까지 협상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아 난감한 심정을 간접적으로 비쳤다.

이번 핵 협상은 장기적으로는 이란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FT는 분석했다. 이란 내에서 온건파의 영향력이 커지고, 미국과 신뢰를 회복하면서 핵 이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협력을 넓힐 수 있다.

하지만 하메네이는 단기적으로 지지층 이탈 등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예멘과 시리아 등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중재하는 데 나서지 않고, 반(反)이스라엘 전선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알라 바에즈 국제위기그룹(ICG) 수석분석가는 “하메네이가 지지층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번 합의가 다른 이슈에서도 타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핵협상#하메네이#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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