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구해 줘”…안식일 화마가 앗아간 일곱 명의 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2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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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안식일(금요일 일몰 때부터 토요일 일몰 때까지)에 편안히 자고 있던 유대인 가정집에 불이 나 5~16세 8남매(4남 4녀) 중 7명이 숨지는 비극이 미국 뉴욕에서 발생했다. 2층 침실 창문에서 뛰어내린 엄마와 둘째 딸도 중태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은 “붉은 악마(火魔)가 작은 천사 일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보도했다.

21일 0시 20분 경(현지 시간) 뉴욕 브루클린 베드포드 애버뉴의 게일 사순 씨(45) 단독주택의 1층 주방에서 발생한 불은 집 내부 목조 계단을 타고 금세 2층으로 번졌다. 화재경보기가 지하에만 설치돼 있고 1, 2층엔 없어서 사순 씨가 화재 발생을 깨달았을 땐 불 때문에 자녀들 침실로 접근하기 어려웠다고 NYT가 보도했다. 사순 씨는 2층에서 뛰어내려 이웃집으로 달려가 “집이 불타고 있어요. 안에 아이들이 있어요”라며 도움을 청했다. 이 무렵 잠에서 깬 아이들은 창밖으로 “엄마, 구해 줘” “살려 주세요”를 외치고 있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8명 중 시포라 양(15)만 앞뜰로 뛰어내렸다.

소방차 25대와 소방관 100여 명이 투입됐고 소방관들이 화염을 뚫고 2층으로 진입해 침실과 복도에 쓰러져 있던 7명의 아이들을 창문 밖 사다리차에 옮겼다. 다니엘 니그로 뉴욕시 소방국장은 “이미 화상이 심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며 인근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한 명도 살아나지 못했다. 뉴욕시 전체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NYT는 “이번 화재의 직간접적 원인이 안식일 규율과 관계가 있다”며 ‘종교의식과 안전의식의 충돌’ 문제를 지적했다. 어떤 노동도 하지 않는 유대교 안식일엔 요리도 해선 안 되기 때문에 주부들은 사전에 만들어놓은 음식이 식지 않도록 ‘핫플레이트(Hot plate·조리용 전기히터)’ 위에 24시간 올려둔다. 소방당국은 핫플레이트의 고장을 이번 화재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화재 당시 아이들 아빠는 유대교 회당에서 야간 예배에 참석 중이었고 안식일 규율에 따라 모두 휴대전화 전원을 다 끄고 TV도 틀지 않아서 6~7시간이나 지나서야 아빠의 소재가 파악되기도 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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