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安美經中?… 재무상 “조건 맞으면 AIIB 가입 협의”

  • 동아일보

[외교안보]
기존 부정적 입장서 기류 변화… 中정부 즉각 “환영”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가에 부정적이던 일본이 20일 조건부 참가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이날 각료회의를 마친 뒤 연 기자회견에서 AIIB 가입과 관련해 “일본이 요구하고 있는 의사 결정의 투명성과 상환 능력을 고려한 융자 시스템이 보증된다면 안에 들어가 협의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겠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는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이웃인 한국과 일본이 관련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면서 “우리는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신화통신도 이날 서울발 기사에서 “한국 기획재정부가 AIIB에 참가하기 위해 지분 획득 문제 등의 조건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과 한국이 AIIB 참가에 관심을 보인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앞으로 AIIB의 투명성 확보와 지분 배분 등을 논의하는 협의가 중일, 한중 사이에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갑작스러운 일본의 태도 변화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다음 달 말 미국 방문 중 발표될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합의를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손잡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신(新)균형외교의 세계적 흐름 속에 자칫 일본만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언론도 갑작스레 AIIB 참가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지면에 ‘중국이 주도하는 인프라은행에 적극 관여를’이란 제목의 사설을 싣고 “유럽 선진국이 참가해 파급력이 있는 국제금융기관이 아시아에서 탄생하는 이상 계속 외면해서는 안 된다. 대중 무역 및 투자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7개국(G7) 중 4개국이 AIIB에 참가하면서 ‘미·일·유럽 vs 중국’이란 대치구조가 완전히 붕괴됐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특히 “AIIB에 참가하지 않으면 (인프라 건설) 입찰 등에서 불리한 조건에 놓이는 게 아닌지 우려하는 일본 기업도 많다”며 AIIB에 적극 참여해서 중국이 독주하지 못하도록 관여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놀라는 분위기다.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학)는 “어제까지만 해도 일본은 AIIB에 참가하지 않으면서 이 기회에 미일 동맹을 굳히려는 분위기였다”며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호주도 AIIB 참가를 표명하면서 자칫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초조감이 급속히 확산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교도통신도 “AIIB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경제대국의 패권 다툼 문제로 부상하는 마당에 일본이 미국의 반대에도 이런 언급을 내놓은 것 자체가 놀랄 만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참가가 확정되면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증대에 반비례해 미국의 영향력 후퇴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일이 주도해온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위상도 하락이 예상된다.

한편 아소 부총리의 발언 이후 일본의 AIIB 참가 가능성이 지나치게 부각되자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참의원 예산의원회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발언 수위를 낮췄다. 아베 총리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공정한 구조를 확립할 수 있는지”, “채무의 지속 가능성을 무시한 대출을 함으로써 다른 채권자에게도 손해를 주지 않을 것인지” 등의 우려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중국#AIIB#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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