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원론적 입장에… 류젠차오, 언론-국회 직접 설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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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사드-AIIB 압박 본격화]

목청 높인 류젠차오… 대응 앞둔 러셀 16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에서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와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왼쪽 사진 왼쪽)가 양자회담을 가졌다. 오른쪽 사진은 이날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목청 높인 류젠차오… 대응 앞둔 러셀 16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에서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와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왼쪽 사진 왼쪽)가 양자회담을 가졌다. 오른쪽 사진은 이날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중국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한국 여론을 직접 공략하고 나섰다.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는 방한 전인 12일 주중 한국 특파원단과 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16일 오전에는 각 언론사 중국담당 전문기자들과도 간담회를 열었다. 이어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만나는 등 한국 언론과 정치권을 전방위적으로 접촉하고 나섰다. 지난달 방한했던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의 행보와는 크게 다른 행보였다.

○ ‘오프더레코드’로 강경한 중국 입장 설명


지난달 4일 국방부 청사에서 한중 국방장관 회담을 했던 창 부장은 “사드 체계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한중관계가 훼손될 것”이라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는 안보 사안을 책임진 국방 당국자 간 비공개 대화에서였다. 대화 내용도 한국 국방부가 기자들에게 재설명(디브리핑)을 하는 과정에서 공개됐다.

반면 류 부장조리는 훨씬 직설적이었다.

주중 한국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선 대화 내용을 전부 ‘비보도(오프더레코드)’로 요구했지만 강경한 표현으로 중국 입장을 설명하는 여론 정지작업을 폈다. 한중 차관보급 회의가 열린 16일에는 각 언론사 중국담당 전문기자들과 간담회로 이를 반복했다.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차관보급 회의 뒤에는 기자들의 질문에 통역까지 대동해 사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통상 중국 외교관들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거나 “좋았다” 정도의 원론적인 답변만 한다.

따라서 이날 류 부장조리의 기자 문답은 중국 정부 차원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날 오후 5시에는 나 위원장을 따로 만나 사드에 대한 우려를 재차 표명했다. 한국 여론과 국회를 상대로 직접적인 여론전을 펼친 셈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여당 일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드에 대한 입장을 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 때문에 국회를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 ‘사드 우려’는 전면 반대의 외교적 표현

한국 정부는 이날 류 부장조리가 중국의 관심사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차원에서 “사드 문제는 신중하게 처리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 표명만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우려한다’고 밝힌 것은 외교적 완곡어법일 뿐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상 ‘사드 자체가 싫다’라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신중하게 처리하면 사드 배치에 동의할 수도 있다’는 것과도 전혀 다른 맥락이다.

중국은 미국의 사드를 자신의 태평양 전략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서태평양에 대한 통제력 확보와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한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 and Area Denial·A2/AD)’가 핵심이다. 대만 사태 등이 터졌을 때 미국이 서태평양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사 전문가들은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됐을 때 레이더의 최대 탐지 거리인 2000km 내에는 중국의 전략무기들이 없다고 말한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전략무기 기지는 내륙 깊숙한 곳에 있어 사드의 탐지권을 벗어난다”며 “중국은 사드가 현실적 위협이어서가 아니라 중국 영향권 내로 들어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어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AIIB는 중국의 은행 아니다” 투명성 강조


중국이 창설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해서도 류 부장조리는 “한국이 AIIB 구성원이 되는 것을 환영한다”며 한국의 조기 가입을 강하게 요구했다. 지난주 영국이 가입을 결정하면서 중국은 AIIB의 투명성과 지배구조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외교 당국자는 “이날 논의에서 중국은 영국을 언급하지 않았고 한국에 대해서는 창립 멤버로 들어오기를 기대한다는 요지의 발언만 있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달 말까지만 AIIB 창립멤버를 받아들일 예정임을 강조하며 ‘나중에 가입하면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태도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주장과 달리 AIIB는 중국의 은행이 아니며 이미 회원국들의 결의로 투명하게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만큼 한국이 가입을 꺼릴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중국의 사드와 AIIB 관련 파상 공세에 미국의 대응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공격당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문안과 한미 현안 조율을 위해 17일 외교부를 찾는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도 사드 및 AIIB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사드는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3노(no)’ 설명만으로는 중국의 공세를 버티기 어려워졌다. “부지 조사까지 했다”는 미국 측 언급에 대한 추가 설명도 필요한 상황이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류젠차오#언론#국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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