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1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추면서 일본 경제에 ‘트리플 다운(Triple Down)’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비상등이 켜진 가운데 해외 자본이 달아나기 시작하면 국가신용의 3대 지표인 엔화 가치와 주가, 국채 가격이 동반 하락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일본의 신용도 하락으로 엔화 약세가 가속화되면 한국의 수출경쟁력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일본 경제는 현재 미국의 경기회복과 일본은행의 대규모 양적완화에 따라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주가는 상승하고 있다. 2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일본 엔화는 달러당 118엔대에 거래되고 있다. 전날 한때 119엔대까지 떨어졌다가 반등했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이달 14일로 예정된 총선 때까지 120엔 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엔화 약세가 계속되면서 수입 원자재 가격이 뛰고 서민 물가가 치솟자 엔화 가치 하락을 반기던 일본 정부의 기류도 바뀌고 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난달 하순부터 “(엔화 가치 하락의) 템포가 너무 빠르다”는 견제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해외 자금이 증권시장에 쏠리자 닛케이평균주가는 2일 17,663.22엔으로 7년 4개월 만의 최고치를 나타냈다. 하지만 증권시장의 분위기는 그다지 밝지 않다. 미쓰비시스미토모은행의 우노 다이스케(宇野大介) 수석전략가는 산케이신문에 “현재 주가는 일본 기업의 실력을 초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 신용등급의 바로미터인 국채 시장에서도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 재무성은 1일 개인판매용 2년물 국채 모집을 2개월 연속 취소했다. 금융회사 입찰로 정해지는 평균 수익률이 연 0.005%에 불과해 금융회사의 판매가보다 투자자의 만기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투자자의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트리플 다운’의 방아쇠가 당겨질 수 있다는 게 일본 경제전문가들의 우려다. SMBC닛코증권 노지 신(野地愼) 수석전략가는 아사히신문에 “앞으로도 (아베노믹스가) 금융완화와 재정지출에만 기대면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는 이제 안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경제의 궁극적인 탈출구는 무제한 돈풀기가 아니라 경제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전략이다. 하지만 무디스는 평가보고서에서 “중장기적 성장전략과 관련해 정부 능력의 불확실성이 높다”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경제 정책에 의문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2015년 예정대로 법인세가 인하될지 불확실하고 지배구조 개선, 저출산 고령화 대책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부 대책이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 국가신용등급 강등으로 엔화 가치 하락이 가팔라지면 한국경제도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해외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철강, 조선, 전기전자 등의 경쟁력이 약해져 실적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국채금리의 움직임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하지만 국내 증시와 수출 기업의 실적에 당장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안기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엔화 약세가 계속되겠지만 최근 엔화 가치 하락 속도가 가팔랐던 만큼 계속 하락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엔화 약세 속도가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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