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유화 제스처… 美 “두번 속지 않아” 냉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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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동부 독립투표 연기 제안… 크림서 당한 서방은 진의 의심
러, 전쟁 대신 압박… 장기전 채비
경제제재 피해 한발 후퇴 분석도… 친러 시위대는 “11일 투표 강행”

“우크라이나 내전을 막기 위한 결단인가. 서방의 제재에 대비해 시간을 벌기 위한 ‘양치기 소년’ 식 행태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분리 독립 주민투표 연기를 전격 제안하자 해석이 분분하다. 크림 사태 때도 서방이 푸틴에게 뒤통수를 맞았던 터라 백악관과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은 푸틴의 진의에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모스크바를 방문한 디디에 부르칼테르 스위스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서 러시아 병력을 철수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25일로 예정된 우크라이나 대선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진일보적 조치”라며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 지금까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등은 “자국 국민에게 군대를 보내는 정부가 대선을 실시한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며 우크라이나 대선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백악관과 NATO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러시아군의 어떤 변화도 관찰되지 않는다”며 푸틴의 발언을 의심하고 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또 “(우크라이나 동부의) 불법적 주민투표는 연기가 아니라 취소돼야 한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 때문에 푸틴의 이번 발언이 장기전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올 3월 총성 한방 울리지 않고 신속하게 합병한 크림 반도와 달리 러시아가 참전해 대규모 인명 살상이 일어난다면 최근 고공 행진하는 푸틴의 국내 지지도가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푸틴은 피해가 큰 전쟁 대신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러시아편에 유리한 대통령이 당선되도록 조정하거나 러시아 가스를 활용한 ‘당근’과 ‘채찍’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NATO나 EU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대선을 방해한다면 광범위한 경제 제재를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푸틴이 한발 물러선 배경으로 꼽힌다.

푸틴의 이날 발언으로 도네츠크 하리코프 루간스크 주의 분리 독립은 무산될 공산이 있다. 하지만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주(州)의 친러 시위대는 8일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11일 예정대로 실시하겠다고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밝혔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와 친러 시위대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반면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공동의장인 데니스 푸실린은 7일 “균형 잡힌 지도자인 푸틴 대통령의 견해를 존중하며 그의 제안을 주민회의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드리 파루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은 “푸틴 발언에 대한 분리주의자들의 반응은 그동안 푸틴이 우크라이나 동부의 폭력 사태를 배후에서 조장해 왔다는 것에 대한 역설적 증거”라고 지적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푸틴#우크라이나#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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