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0km 돌며 민생 돌본 청렴공무원, 그의 죽음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4일 17시 23분


코멘트
5년 전 대지진의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온몸을 바쳐 노력하다 숨진 중국 쓰촨 성 베이촨 창족 자치현 란후이 부현장(가운데 체크무늬 셔츠). 그는 사고 당일에도 지진 피해복구 현장을 시찰하고 있었다. (출처 중국신문망)
5년 전 대지진의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온몸을 바쳐 노력하다 숨진 중국 쓰촨 성 베이촨 창족 자치현 란후이 부현장(가운데 체크무늬 셔츠). 그는 사고 당일에도 지진 피해복구 현장을 시찰하고 있었다. (출처 중국신문망)
3년여 동안 24만km, 하루 평균 200km를 이동하며 민생을 돌보다가 사고로 숨진 한 시골 공무원에 대한 추모 열기로 중국이 뜨겁다.

주인공은 5월 23일 관내 시찰 도중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져 숨진 쓰촨(四川) 성 베이촨(北川)창(羌)족 자치현 란후이(蘭輝) 부현장(48·사진). 관영 신화(新華)통신에 따르면 그는 2008년 베이촨을 초토화시킨 쓰촨 대지진 이후 주말과 휴가 없이 일했다.

란 부현장이 남긴 8권의 두툼한 업무 일지에는 공무를 위해 분초를 다퉜던 일상이 자세히 적혀 있다. 사고 당일에도 오전 8시 반부터 공사 현장 5곳을 들렀고 주민 좌담회 2곳을 참석했다. 오후 2시에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은 뒤 다른 민생 현장으로 이동하다 변을 당했다. 증세가 악화된 치질 수술을 받은 뒤 한 달을 요양하라는 병원 측의 충고를 뿌리치고 현장을 다니던 길이었다. 베이촨이 지진의 아픔을 극복하는 데는 란 부현장의 이 같은 헌신이 있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그는 공안, 소방, 교통, 민정, 관광, 안전 등을 책임지는 부현장이었다. 상급 행정기관인 양(綿陽) 시 안전감독국 옌중여우(嚴忠友) 국장은 "쓰촨 대지진으로 위험한 교량과 길, 재해구역이 너무 많다"며 "하지만 란 부현장은 현장을 직접 뛰었다"고 소개했다. 그가 추락한 절벽 길도 무려 60여 m 높이에 있다.

동료들 눈에 부현장은 '머릿속에 온통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재지변은 피할 수 없지만 인재를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며 "내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않아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 역시 대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은 만큼 더욱 일에 매진했다. 매일 10여 시간을 일했고 점심은 거의 오후 2시가 돼야 간단히 먹었다고 한다. 수행원 없이 수시로 혼자 광산 등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체크했다.

베이촨 거의 모든 주민이 그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았다고 한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누구라도 곤란한 일이 생기면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란 부현장은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했다"며 "그의 휴대전화는 '레이펑(雷鋒) 핫라인'이었다"고 보도했다. 레이펑은 1962년 숨진 인민해방군 병사로, '다른 사람의 곤란을 나의 곤란으로 삼는' 이상적인 공산주의자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그는 소수민족인 후이(回)족으로 부친은 차(茶)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현의 고위관리지만 그의 부인은 지금까지 현 산하 기관에 임시직원으로 고용돼 잡일을 하고 있고 형과 동생도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 대지진 이후 분배받은 큰 집은 아버지께 드리고, 그는 아버지 명의의 면적 91.4㎡의 집에서 살았다. 주민들은 "가장 관리 같지 않은 관리였다"며 "그는 죽기 살기로 일했고 정직했으며 청렴결백했다"고 회고했다. 키 172cm에 몸무게가 60kg이 되지 않는 마른 체격은 그의 이런 성품을 말없이 보여줬다.

이 같은 사연이 뒤늦게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를 애도하는 물결이 일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23일 "란 부현장에게 배우라"고 지시했다. 1963년 마오쩌둥(毛澤東)이 "레이펑 동지에게 배우라"고 말한 장면과 흡사하다. 시 주석은 "란후이 동지는 당과 인민을 최고의 위치에 두고 생명을 바쳐 당의 군중 노선을 실천했던 훌륭한 간부"라며 "새로운 시대 공산당의 모범"이라고 추모했다.

베이징=이헌진특파원 mungchi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