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에콰도르에 망명 신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5일 03시 00분


러서 남미행 타진… 美 케리 국무 “중-러, 출국 돕는다면 관계 악영향” 압박
에콰도르 외교 “망명 허용 검토중”… 예약했던 쿠바행 비행기엔 안 타
위키리크스측 “피신 여행 돕고있다”

홍콩에 은신하며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개인정보 수집 프로그램을 폭로한 뒤 러시아로 피신한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이 남미의 반미(反美) 국가 에콰도르에 망명을 신청했다. 에콰도르는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에 이어 스노든의 망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나타내 미국과 각을 세웠다. 미국은 스노든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전방위 외교전에 나섰다.

리카르도 파티뇨 에콰도르 외교장관은 2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기자들과 만나 “스노든이 망명을 신청했으며 현재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나라는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지만 우리는 원칙을 따른다. 우리는 인권을 존중한다”고 말해 망명을 허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에콰도르 일간지 오이는 러시아 주재 대사가 스노든과 면담했으며 대사관 주치의가 스노든을 검진했다고 전했다.

23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한 스노든은 하룻밤을 공항 ‘환승 구역’에서 보냈다. 스노든은 24일 오후 2시 5분 출발하는 쿠바 수도 아바나행 러시아 여객기 ‘아에로플로트 150’ 에어버스 330의 ‘17A’ 좌석을 예약했지만 탑승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같은 비행기 좌석까지 예약하며 자신을 추적하고 있는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일부러 쿠바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전했다.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스노든이 다른 비행기 편으로 러시아를 떠났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도했으나 목적지는 밝히지 않았다. NYT는 러시아 당국이 미국으로의 신병 인도나 자체 조사 등을 위해 그를 억류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스노든이 대표적 반미 국가인 쿠바를 거쳐 에콰도르로 향한다면 미국 당국의 스노든 검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스노든의 도피 과정에는 위키리크스 측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위키리크스 법률 자문을 돕고 있는 영국인 세라 해리슨 씨는 스노든이 홍콩에서 러시아로 갈 때 동행한 데 이어 아바나행 비행기에도 스노든과 같이 탑승 예약을 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어산지는 NYT와의 통화에서 “스노든이 에콰도르로의 피신 여행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의 외교 문제로 번지고 있다. 인도를 방문 중인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4일 뉴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와 중국 정부가) 스노든이 해외로 나갈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허락했다면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라면서 “(이것이 사실이라면) 틀림없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최근 2년 동안 7명의 범죄인을 러시아에 인도했다”며 “러시아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스노든의 신병을 인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도 “중범죄 혐의로 기소된 인물의 국가 간 이동을 더 진행시켜서는 안 되며 미국으로 되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10일부터 홍콩 정부를 상대로 스노든 추방 협상을 벌였으며 22일 스노든을 간첩, 절도, 정부재산 무단 개조 등의 혐의로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 연방 지방법원에 기소했다.

NSA 대변인도 성명을 내고 “러시아 정부가 스노든을 미국으로 돌려보내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처벌받도록 가능한 한 모든 옵션을 검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척 슈머 상원의원(민주·뉴욕)과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하원의원(공화·플로리다) 등은 스노든을 받아들인 러시아를 강력한 어조로 비난했다.

홍콩은 중국에 책임을 돌렸다. 홍콩 민주당의 앨버트 호춘얀(何俊仁) 의원은 이날 현지 언론에 ‘자칭 정부를 대표하는 인사’가 스노든에게 홍콩을 떠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변호사이기도 한 그는 스노든을 대리해 홍콩 정부와 협상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출국 종용이 있었다고 전했다. 호 의원은 “홍콩 정부는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결정권이나 발언권도 없었다”며 “이 인사가 베이징(北京)을 대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중국은 스노든 문제를 홍콩에 떠밀며 미국 비난에 활용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홍콩 정부의 스노든 출국 허용 결정과 관련해 “홍콩특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워싱턴=신석호·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yle@donga.com

▼ 에콰도르는… 어산지 망명 허용한 남미의 反美 3대축 ▼

에드워드 스노든의 최종 정착지로 유력한 에콰도르는 볼리비아, 베네수엘라와 더불어 남미에서 반미(反美) 3대 축으로 꼽힌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보다 명성은 떨어지지만 그동안 반미 정책과 발언을 자주 내놓아 미국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그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고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 에콰도르 군기지 사용을 요청했을 때 거부했을 정도로 선명한 반미 노선을 택하고 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악마에 비유했을 때 코레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부시는) 악마보다 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코레아 대통령이 지난해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에 이어 스노든에게도 망명을 허용할 경우 반미 지도자로서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레아 대통령은 올 2월 대선에서 3선에 성공했다.

과거에는 주로 쿠바가 망명지로 각광받았다. 흑인 무장단체 일원이었던 조앤 체시마드,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내부 기밀을 폭로한 필립 에지 등이 미국을 탈출해 쿠바를 망명지로 택했다. 그러나 최근 쿠바가 시장 개방에 나서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이면서 에콰도르가 반미 인사의 피신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스노든#에콰도르#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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