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말발 약해진 美 때문에 흔들리는 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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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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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국제부
구자룡 국제부
1988년 나온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의 역작 ‘강대국의 흥망’은 21세기에 미국 소련 서유럽 등의 쇠퇴를 전망하면서 “패권 교체기에는 안보 등 국제사회 인프라가 흔들린다”고 분석했다.

그가 말한 대로 요즘 국제정세를 보노라면 패권 교체기라는 말이 실감 난다. 미국은 더이상 과거와 같은 패권국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침체로 달러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생각될 때도 많다. 요즘 미국 내에서는 “세계 체제 유지 비용을 우리가 떠안을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때마침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약해짐으로써 벌어지는 현상을 상세히 분석했다. 시리아 사태가 악화되고 있으나 서방은 무력하고 러시아와 이란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무기를 보내면서까지 후원하는 대담함을 보이고 있다. 이란은 점차 핵무장을 향해 가고 있으며, 이란이 성공적으로 핵을 개발하면 주변국으로 핵확산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주요 8개국(G8) 회의에 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초대를 거부하고 주요 외교 현안마다 미국에 몽니를 부리고 있다.

이집트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지 못하는 것도 미국의 영향력 저하가 한 요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무슬림형제단은 미국이 과거 호스니 무바라크 군사 정권을 지원했다며 불신하고 있고 군부는 무바라크가 몰락하는 것을 미국이 방조했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중동의 중심국인 이집트에서 미국의 조정자 역할이 이렇게 줄어들면 중동 국가 간 분쟁이나 ‘피의 보복’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럽 재정위기 사태가 쉽게 가닥을 잡지 못하는 것도 유럽국들이 더이상 미국의 훈수를 듣지 않는 데에 한 요인이 있다. ‘도와주는 것도 없는데 미국이나 잘하라’는 태도를 보이는 유럽에 미국의 말발이 먹힐 리 없다. WSJ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이라는 걸리버’가 없어진 것을 환영하는 세력이 있지만 이제 미국의 리더십도, 유엔에 의한 집단안보도 어려워지는 국제사회에서 치안 공백 상태가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패권 교체기의 혼란을 끝낼 수 있는 새로운 체제를 빨리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구자룡 국제부 bonhong@donga.com
#미국#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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