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다리로 ‘뚜벅뚜벅’… 기적의 42.195km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0일 03시 00분


하반신이 마비된 영국 여성이 불굴의 의지와 ‘로봇 다리’의 힘을 빌려 무려 16일간을 ‘걸어서’ 런던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완주했다. 그의 도전정신에 대한 찬사와 함께 도전을 가능케 만든 ‘로봇 다리’에도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32세의 클레어 로머스 씨. 그는 2007년 영국 노팅엄셔에서 열린 오스버턴 경마대회에 참가했다가 불의의 낙마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더는 걸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그는 절망으로 세월을 보내는 대신 장애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직업도 지압사에서 보석 디자이너로 바꿨다. 그리고 마침내 런던 마라톤 도전에까지 이른 것.

그가 마라톤에 참가하기로 결심한 것은 자신과 같은 마비환자들의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 의학연구단체에 기부금을 모아 주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그의 도전을 가능케 한 것은 ‘리워크(rewalk)’라는 브랜드의 ‘로봇 다리’가 결정적이었다.

리워크는 이스라엘 재활치료 의료기 전문회사 아르고 메디컬 테크놀로지사가 만들어 상업화한 것.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들이 스스로 걷고, 앉았다 일어나며,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게 해주는 획기적인 첨단 보행 보조기다. 이 장치는 로봇 다리를 조종하는 본체와 배터리가 들어 있는 배낭 형태의 백팩, 왼쪽 가슴에 착용해 걷는 땅의 경사 각도를 측정하는 센서, 양다리 부분의 동작감지 센서, 양다리 바깥쪽에 설치된 동력장치 등으로 이뤄졌다.

양다리와 상체에 붙인 동작 감지 센서가 사용자의 상·하체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해 백팩 내 본체에 데이터를 전송하면 이를 바탕으로 다리의 동력장치를 움직이게 동작을 조절한다. 경사 감지 센서는 경사 각도를 측정해 사용자가 쓰러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왼쪽 팔목에 장착한 원격조종장치는 자동차의 기어장치처럼 ‘일어나기, 앉기, 걷기, 계단 오르기’ 등 4가지 움직임을 설정할 수 있다.

로머스 씨는 올해 1월 23일부터 매일 리워크를 착용하고 한 발짝씩 걷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4월 22일부터 매일 평균 2.4km씩 런던 마라톤 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밤이면 근처 호텔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이면 전날 마친 지점부터 다시 걸었다. 총 16일 동안 계속된 도전에 남편 댄 스파이서 씨(37)도 동행했다. 로머스 씨의 부모와 13개월짜리 딸도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다.

드디어 8일 낮 12시 50분. 런던 마라톤 골인 지점인 버킹엄 인근 더 몰가(街) 근처에 그가 목발과 로봇 다리를 착용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수백 명이 모여들었다. 군중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당당히 결승선을 끊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로머스 씨는 “나를 지지하고 도와준 여러분이 없었다면 풀코스 완주를 결코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나의 남은 인생은 내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걸을 수 있게 만들어준 리워크에도 감사의 뜻을 밝혔다.

그의 완주로 그가 기부를 부탁한 사이트(www.justgiving.com/Claire-Lomas)에는 당초 목표 금액이었던 5만 파운드(약 9100만 원)를 훌쩍 넘긴 10만8122파운드(약 1억9800만 원)가 모였다.

리워크는 신체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동작을 감지하는 센서가 이를 감지해 동력장치를 구동하기 때문에 전신마비 환자는 사용할 수 없다. 아르고 메디컬 테크놀로지사는 리워크를 영국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의 지정 대리점을 통해서만 판매하고 있다. 대당 4만3000파운드(약 7900만 원)이며 인터넷으론 판매하지 않는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로봇다리#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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