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薄熙來) 전 중국 충칭(重慶) 시 서기의 이중적 삶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가의 재산 축적과 아들의 호화 해외생활 등이 전해지면서 중국인들의 배신감은 커지고 있다. ‘창훙다헤이(唱紅打黑·혁명가요 부르기와 사회악 척결)’ 운동을 앞세워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주창해온 그의 뒤에는 부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이런 문제가 보시라이 한 사람에 국한되는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개인생활에 대한 언론이나 감시기관의 검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오랜 기간 막대한 권력을 누려온 중국 지도부의 위선의 일단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 고위직 오를수록 일가 재산 늘어
보시라이가 3월 중순 몰락의 길을 걷기 몇 주 전에 그는 충칭의 수자원 관리회사를 칭찬하고 지원을 강조했다. 당시 그는 이 회사가 동생이 지분을 가진 회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3일 보도했다.
충칭의 1인자인 서기를 맡은 5년을 포함해 최근 10년 동안 보시라이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으로 서민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 사이 그의 친척들은 약 1억6000만 달러(약 1800억 원)의 재산을 쌓은 것으로 NYT는 추정했다. 큰형, 여동생, 처형 등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것. 심지어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에 유학하는 25세 아들 보과과(薄瓜瓜)도 자본금 32만 달러(약 3억6000만 원)로 2010년 사업을 시작했다. 보과과는 최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고 호화 파티에 자주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금 조달에 대한 의혹을 사왔다. 보시라이의 일가 가운데 누구도 재산 관련 불법 혐의로 적발되지는 않았지만 보시라이가 일가의 재산 형성 과정에 영향을 줬을 개연성이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보시라이가 소속된 태자당(혁명원로의 자제) 전체의 재산 축적에도 의혹이 쏠린다고 NYT는 전했다. NYT는 “다른 지도자들의 친척들도 각종 사업을 한다”며 “사람들은 보시라이 일가만이 이렇게 할까라고 묻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문혁의 피해자이면서도 문혁을 주창
보시라이는 문화혁명 과정에서 큰 고초를 겪었다. 중국이 건국된 1949년 태어난 그는 건국공신이자 나중에 부총리를 지낸 보이보(薄一波)의 차남이다. 행복했던 유년시절은 그가 18세이던 1967년 문혁 초기에 아버지가 반혁명 분자로 몰려 실각하면서 끝난다.
당시 그는 아버지와 같이 반혁명분자로 몰려 1967년 12월 하순부터 4년 8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고, 이후 1972년 풀려나 베이징의 공장에서 1978년까지 다시 5년여를 일했다고 홍콩의 보시라이 관련 서적은 소개했다. 10대 후반에서부터 30세까지 갖은 고생을 겪었다는 얘기다. 소년시절 강성 홍위병 행세를 하려고 아버지를 걷어차 갈비뼈를 부러뜨렸다는 설도 돌았으나 홍콩 언론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어머니도 문혁시기 핍박을 받다 자살했다. 보시라이가 권력욕을 갖게 된 이유를 이 시기의 경험에서 찾는 해석도 있다.
그런 그가 2007년 12월 충칭 시 서기가 되자 문혁 초기의 평등하고 이상주의적인 시대로 돌아가자고 대대적인 선전전을 펼친 것은 아이로니컬하다고 홍콩 언론은 분석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라는 것.
앞서 보시라이는 다롄(大連) 시 시장과 서기로 재직하는 동안 적극적인 외자유치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랴오닝(遼寧) 성 성장을 거쳐 중앙 무대로 발탁돼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상무부장을 맡았다. 상무부장으로 미국 등 서방 세계와 강단 있는 협상자세를 보여 중국 국민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그는 부총리 등 중앙 정계의 원하는 자리로 가지 못했다. 4대 직할시 중 하나지만 내륙에 있는 충칭 서기가 된 것은 이례적 일이었다.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원이 맡기에는 작은 자리였기 때문. 이 때문에 베이징 정가에서는 아버지 체면을 봐 정치국원으로 승진시켜 체면을 세워준 뒤 실제로는 ‘유배’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집안 배경과 186cm의 훤칠한 키, 화려한 언변 등 조건이 좋지만 상사와의 불화와 혹독한 부하관리, 언행이 지나치게 튀는 개인 성향 등이 발목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보시라이가 몰락하면서 그를 둘러싼 온갖 추문이 홍수를 이룬다. 미모의 아나운서를 포함해 100여 명의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확인하기 어려운 소문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누구도 그를 변호해주지 않는 처지가 됐다. 한평생 추구한 권력욕의 부산물이다.
‘보시라이 사태’를 촉발한 왕리쥔(王立軍·사진) 전 중국 충칭(重慶) 시 공안국장이 사형을 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반면 보시라이 전 충칭 시 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 씨는 사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며 보 전 서기는 극형은 면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당국이 홍콩 고위 간부와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을 토대로 24일 이같이 보도했다.
지난주 광둥(廣東) 성 선전의 교외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베이징에서 온 당국자들은 왕 전 국장이 미국 망명을 시도한 것 자체는 극형을 피할 수 없지만 그동안 보 전 서기 조사 과정에서 기여를 했기 때문에 형량을 줄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유죄를 인정하고 조사에 협조해 감형을 받는 ‘플리바기닝’을 인정했다는 것.
반면 구 씨는 영국인 닐 헤이우드 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보 전 서기는 종범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보 전 서기를 비호하다 궁지에 몰렸다는 설이 돌고 있는 저우융캉(周永康)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대해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조사 중이라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24일 보도했다. 하지만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이날 저우 위원이 지난달 전국정법위원회 행사에서 한 강연을 자세하게 소개해 그가 건재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저우 위원은 강연에서 “올해 18차 당대회를 성공적으로 열 수 있도록 조화롭고 안정적인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정법기관의 첫 번째 임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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