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미만 사후피임약 마음대로 사용 안돼”… 美보건부 ‘FDA 허용 계획’ 제동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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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전 필요’ 현 정책 유지… 여성단체들 판매규제 비난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에 복용하면 임신을 막을 수 있는 사후응급피임약을 모든 연령대의 여성이 의사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려던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방침에 급제동이 걸렸다.

FDA의 상급기관인 보건부의 캐슬린 시벨리어스 장관은 17세 미만 여성에게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 ‘플랜B 원스텝’ 판매를 허용하려던 FDA의 계획을 철회시키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이로써 17세 이상의 여성은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지만 17세 미만은 처방전이 필요한 현재의 정책이 계속 유지된다.

FDA의 결정에 대한 최종 심사권을 가진 보건부가 실제로 FDA의 결정을 뒤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FDA 대변인은 밝혔다.

앞서 ‘플랜B 원스텝’의 제조사인 이스라엘에 근거를 둔 다국적 제약사 테바는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을 구입하는 데 연령 제한을 없애달라고 FDA에 요청했었다.

이에 대해 FDA는 사후피임약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모든 가임기 여성이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내부 결정을 내리고 최후 통보일인 7일에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다. FDA는 젊은 가임기 여성들이 사후피임약을 남용할 위험이 없으며 의사의 간섭 없이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벨리어스 장관은 FDA에 보낸 서한에서 “11세의 여성도 임신이 가능한 상황에서 제조사는 어린 가임기 여성이 이 약물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연구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반대 이유를 밝혔다.

대다수 의학전문가들은 보건부의 이번 결정을 매우 의외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 유권자들을 의식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보수시민단체인 가족연구협회(FRC)는 “사후피임약을 처방 없이 판매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남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부모 몰래 복용하는 사례가 생기게 된다”며 보건부 결정을 환영했다.

여성단체와 산부인과 의사들은 “사후피임약이 안전하고 효과적인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연령별 판매 규제를 유지하기로 한 것은 과학적이 아닌 정치적인 결정”이라며 비난했다.

미국에서 ‘플랜B 원스텝’과 같은 사후피임약은 2004년 50만 개에서 지난해 400만 개로 판매량이 급상승했다. 현재 17세 이상의 신분 증명을 하면 약사가 처방전 없이도 약품을 판매하지만 17세 미만인 경우에는 처방전을 제시해야 한다.

사후피임약에는 일반 피임약에 포함된 여성호르몬 프로게스테론의 고농축 합성 성분이 들어있다. 판매 지지자들은 사후피임약이 성관계 후 빨리 복용할수록 효과가 높기 때문에 처방전 없이 편의점, 대형마트 판매대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에서 사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서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으며 처방에 연령 제한은 없다. 현재 시판되는 제품은 13종이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플랜B’는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다. 올 8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17개 의약품 중 6개 품목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면서 사후피임약에 대해서는 오남용 가능성과 유익성 등에 대한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결정을 보류한 상태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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