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비행기 한대 안뜨는 스페인 지방공항… 정치 공황이 낳은 ‘유령공항’

  • 동아일보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라만차 주의 주도인 소도시 시우다드레알. 해발 600m의 고원에 펼쳐진 이 도시는 철도와 도로로 수도 마드리드와 연결돼 있다. 인구가 7만4000명에 불과한 이곳의 중앙공항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유령공항’이다. 황량한 들판에 건물 하나만 달랑 서있는 이 볼썽사나운 공항은 비행기를 찾아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가는 사람도 없다.

혼잡한 마드리드 공항의 숨통을 틔워 줄 위성공항으로 2008년 문을 연 이 공항은 연간 250만 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개항 후 3년이 지났지만 기대했던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고 AP통신이 22일 보도했다. 한 택시운전사는 “언제 공항으로 가는 승객을 태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공항은 그래도 낫다. 운영을 시작한 지 2년째인 스페인 북부의 우에스카 공항은 최근 6개월간 이착륙한 민간항공기가 한 대도 없다. 3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이곳에는 식당을 찾는 지역 주민들만 간혹 보인다.

스페인 동쪽 해안의 카스테욘 주에도 3월 1억5000만 유로(약 2300억 원)를 들여 공항을 건설했으나 비행기 한 대 뜨지 않았다. 공항 입구에는 부패 혐의로 수차례 조사를 받은 주지사 카를로스 파브라 씨의 동상이 서 있는데 높이가 24m나 된다. 이 공항은 테마파크 건립 계획과 맞물려 들어섰지만 테마파크 계획이 표류하며 ‘유령공항’으로 변했다.

유로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실업률과 재정적자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공룡’ 스페인이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된 데에는 이처럼 실제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과시성으로 공항건설 같은 대형 사업에 큰돈을 쏟아 부은 게 주요 원인이 됐다. 공항뿐만 아니라 고속도로, 고속철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이 현실성 없이 과잉투자로 건설돼 골칫거리로 변한 것이다. SOC 건설로 불어난 지방정부의 부채는 2009년 국내총생산(GDP)의 11.2%까지 치솟으며 재정적자 감축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무분별한 예산 집행은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사업성을 무시한 채 선심성 프로젝트를 마구잡이로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관할 지역을 과거 중세시대의 봉토처럼 생각하는 지방 정부의 이해관계도 이러한 현상을 부추겼다.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려는 중앙 정부의 노림수도 한 요인이 됐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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