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반핵운동가 히로세 씨 “녹은 연료 원자로 바닥으로 떨어져… 수소 폭발 등 최악의 상황 올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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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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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아사히 제공
주간아사히 제공
일본의 원자력 전문가 히로세 다카시(廣瀨隆·사진) 씨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원자로 1, 2, 3호기의 멜트다운은 최악의 사고라며 이번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거짓 발표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히로세 씨는 22일 동아일보와 가진 e메일 인터뷰에서 이 같이 밝혔다. 그는 와세다(早稻田)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 기술자로 일했으며 현재 칼럼니스트이자 원자력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히로세 씨는 30여년 동안 반핵운동을 이끌면서 일본 정부의 원자력 정책을 비판해 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시사주간지 주간 아사히에 칼럼 '원전 파국을 저지하라'를 연재하는 등 미디어를 통해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 대책을 비판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그의 저서 '원전을 멈춰라'가 발간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1989년 발간된 그의 저서 '위험한 이야기'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예견한 듯한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해 화제가 됐다.

히로세 씨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발생한 멜트다운이 "원자로 압력용기 안에 있는 우라늄 연료가 고온에서 녹아내려 원자로 밑바닥으로 떨어진 위험한 상태"라며 "최악의 사고"라고 설명했다. 도쿄전력은 원자로 1호기의 멜트다운을 뒤늦게 인정한데 이어 24일 2, 3호기의 멜트다운도 확인됐다는 보고서를 원자력안전보안원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현재 원자로 내부 상태는 모든 계측기를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며 "(계측기 결과에 의존한) 도쿄전력의 발표를 믿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도쿄전력의 발표는 "신뢰할 수 없는 추측"이라는 것이다.

이어 "지금으로선 나 역시 내부 상황을 추측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과학적, 기술적으로 볼 때 원자로 하부로 떨어진 연료가 냉각되지 않을 경우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멜트다운 이후 예상되는 최악의 사태를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정리했다. △재임계를 일으켜 핵이 폭주하는 상황 △연료가 원자로 밑바닥을 파손시킨 뒤 격납용기 안으로 엄청난 양이 떨어져 물과 접촉하며 수증기 폭발을 일으키는 상황 △강한 방사선으로 인해 물이 분해된 뒤 대량의 수소가 발생해 수소폭발을 일으키는 상황이다.

히로세 씨는 세 가지 가운데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지금까지 방출된 양보다 훨씬 많은 방사능 물질이 외부로 뿜어져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멜트다운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 범위에 대해선 "전 지구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히로세 씨는 "대기 중으로 방출된 방사능 물질은 기류를 타고 지구 전체로 확산된다"며 "장소에 따라 농도 차이가 있을 뿐, 전 세계 모든 땅이 오염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후쿠시마 이외 지역에선 방사능 오염 물질의 검출량이 인체에 영향이 없는 정도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을 펼쳤다. 주간아사히에 기고한 칼럼에서 "방사능 물질이 식물에 농축된 뒤 그것을 먹은 인간의 몸 안에 축적돼 암, 백혈병 등 질병을 유발할 것"이라며 "이미 체내피폭으로 인한 암 발생의 잠복기에 돌입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편서풍의 영향으로 한반도에는 방사능 오염 물질이 직접적으로 유입되지는 않을 것이란 한국 정부의 주장에 대해선 "전적으로 틀린 것"이라며 반박했다. 히로세 씨는 "일본에서도 (편서풍 때문에) 일본 서부 지역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각지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멀리 미국에서도 플루토늄이 검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편서풍이 분다고 한국이 직접적인 방사능 오염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란 확증은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원전 사고 이후 한국에서도 방사성 요오드, 세슘 등 인체에 치명적인 물질이 이미 검출된 바 있다.

그는 "일본, 한국 정부가 모두 혼란을 막기 위해 거짓 발표를 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시민이 독자적으로 방사능 측정을 하는 것 말고는 스스로 방사능 오염을 피할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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