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철권통치 뚫는 ‘사이버 전사들’… 그들은 누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2일 03시 00분


조국을 떠났다… 악명높은 비밀경찰 탄압 피해 유럽-美서 활동
조국을 바꾼다… 반정부시위 전세계로 전파… 민주화 투쟁 견인

그는 여러 개의 가명을 쓴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심카드(휴대전화 가입자 정보 식별장치)는 2개를 사용한다. 시리아 비밀경찰의 체포 위협을 피해 레바논 베이루트의 한 아파트에 숨어 사는 그는 시리아 국민의 민주화 열망과 희생을 전 세계에 전하는 사이버 전사다.

그의 가명은 ‘라미 나클레’(26)다. 9일 오후 시리아의 이슬람 사원들에서 기도를 끝낸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퇴진을 외칠 때 그의 아파트는 전쟁을 치르는 벙커와 같았다. 겹겹이 쌓인 피자 상자와 밤샘을 대비해 잔득 쌓아둔 물통 너머 그의 노트북에선 10분이 멀다 하고 인터넷 무료전화 ‘스카이프’가 시끄럽게 울렸다.

첫 전화는 CNN에서 왔다. 그는 반세기 넘게 무국적자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시리아 쿠르드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두 번째 전화는 모로코의 한 라디오방송국이었다. 잠시 숨고를 틈도 없이 이번엔 BBC 기자가 이날의 시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했다. 다음 차례는 AP통신이었다. 통화를 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았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쿠드르족 시위대가 ‘우리는 시민권이 아닌 자유를 원한다’고 외치고 있다” “시리아 터키 이라크의 접경지역인 라스알아인에서 시위 발생” 등의 글을 연이어 올렸다.

아랍위성TV 알자지라는 9일 라미와 같은 시리아의 사이버 전사들을 소개했다. 모두 첨단 온라인 문화에 친숙한 20, 30대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직업은 기자, 변호사, 의사, 엔지니어 등으로 다양하다. 종교도 알아사드 대통령과 같은 종파인 알라위파부터 수니파, 기독교까지 제각각이다. 대부분 체포 위협에 시리아를 떠나 베이루트 워싱턴 런던 파리 등에서 온라인으로 시리아 민주화라는 같은 꿈을 꾼다. 보안군의 실탄에 맞서 싸우는 시리아 현지 국민들에게 마음의 빚도 크다.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오사마 모나제드 씨(31)는 “총탄에 쓰러지는 동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시리아 현지 인터넷언론인 다마스쿠스뷰로는 8일 시리아정부가 말라트 아움란이라는 사이버 활동가에게 “반정부 시위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으면 가족을 체포하겠다는 협박을 했다”고 전했다. 변호사이자 인권운동가인 라잔 자이투나 씨는 “미행하던 비밀경찰이 이젠 드러내놓고 따라다닌다. 보안요원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은 뒤 ‘다음엔 햇빛을 못 볼 거야’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두려움은 시리아의 역사를 바꾸는 혁명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며 “우리는 이미 150여 명의 젊은이를 잃었다. 우리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그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그 생각이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AFP와 AP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시리아 서부에 위치한 주요 석유수출항 바니아스에서 군경이 시내 알라만 사원에 모인 수백 명의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최소 4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했다. 최근 3일간 69명이 숨지는 등 시리아 시위 이후 지금까지 모두 170여 명이 숨졌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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