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익보다 국민 생명이 먼저… 리비아서 완전철수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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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석 외교2차관, 공식석상서 철수 않는 업체들에 쓴소리

민동석 외교통상부 제2차관이 작심한 듯 공식 석상에서 리비아에서 철수하지 않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민 차관은 이날 외교부를 대표해 두산중공업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자리에서 “리비아에 아직 100여 명이 남아 있다. 연일 전투기가 공습하는데, 방공호나 지하실에 대피한다고 생명을 지킬 수 없다”며 “국민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기업들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의 생명과 경제적 이익 사이에서 현명한 결단을 내려주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두산중공업 심규상 사장은 지난달 리비아에서 철수할 때 전세기 제공을 꺼렸던 이집트항공을 설득해준 외교부에 사의를 표하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민 차관의 토로는 공식석상에서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외교관으로서는 이례적이었다. 정부의 철수 권고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우려가 외교부 내에 팽배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외교부는 리비아 공습 이후 20일 대책회의를 열어 기업들의 철수를 권고했지만 기업들은 핵심 시설 보호와 기업 활동 재개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철수를 꺼렸다.

민 차관은 이날 “두산중공업이 리비아 내 재산과 잠재적 시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어려웠을 것임에도 과감하게 철수해 경제적 이익을 희생하는 결단을 보여준 것이 신선한 충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사패가)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센다이 시에서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는 신속대응팀에도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하다 한동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잘못이 발견되면 가혹하다고 할 정도로 비판받는 세태,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왜곡돼 비판받는 일을 많이 겪고 있다”고도 말했다.

증정식이 끝난 뒤에도 민 차관은 “지금은 옛날과 다르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있었으니 써 주시오(배려해 주시오)’ 하는 게 과연 언제까지 통할까”라며 기업들의 논리를 비판했다. 또 일본 대피령을 내리지 않은 정부를 비난하는 여론을 겨냥해 “정부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포퓰리즘이나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여론을 따르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민 차관이 이처럼 직정(直情) 토로를 한 배경에는 2008년 한미 쇠고기협상 대표로 나섰다가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들으며 여론몰이의 희생양이 됐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저서 ‘대한민국에서 공직자로 산다는 것’에서 “공직자는 사람들의 입술 위에서 춤추지 말아야 한다”고 썼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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