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혁명 32년… 달라진 국민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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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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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특파원 이란 3信… 젊은층 ‘친서방’ - 중장년층 ‘반미’ 뒤섞여

이종훈 특파원
이종훈 특파원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친서방을 표방하는 독재자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하나로 모아져 민주화 혁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기자가 5일간 머무른 이란은 양상이 달랐다. 젊은 층은 서구 문화와 가치에 호의적이었지만 중장년층에선 반미 감정이 여전히 강하다.

테헤란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히잡(머리만 가리는 두건)을 둘러쓴 채 코와 턱에 붕대를 감고 안면 전체가 부은 상태로 돌아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알고 보니 높은 코나 매부리코를 깎아 서구식의 코로 만드는 성형수술을 한 것. 또 발리야스르 대로 등 하루 종일 막히는 시내 주요 도로에서는 청소년들이 도로 한가운데를 오가며 운전사나 승객에게 CD나 DVD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 영화나 팝송, 게임 등을 담은 이 불법 디스크들은 우리 돈으로 장당 1만 원에 팔렸는데 인기가 많았다.

어려서부터 위성방송 또는 여러 음성적인 방법으로 서구 문화를 접해온 이곳 젊은이들은 이슬람 혁명 세대와 달리 인권, 평등, 시장 경제 같은 서구적 가치에 익숙해 있다. 그러니 부패한 성직자, 정치인 등 지도층에 환멸을 느끼고 불투명한 미래에 절망하면서 외국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반에서 1등을 한다는 고등학생 라자니 군은 고교를 졸업하면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모친은 “하나뿐인 자식이 유학을 가고 싶어 하는데 돈이 없어 고민이다. 이란에서는 출신 배경이 좋지 않으면 공부만 잘해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선진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과 국내의 억압과 불평등을 피해보고 싶은 욕구가 겹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집안 자녀들은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으로 유학을 떠나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모든 이란 사람이 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19일 팔레비국립공원에서 만난 기념품 매장 주인은 “서민들은 성직자와 정치인들을 미워하긴 하지만 ‘반미’라는 점에서는 하나”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런 반미 감정은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는 대형 상징물에서 잘 드러난다.

테헤란 시내를 다니다 보면 루홀라 호메이니 전 최고지도자와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대형 초상화와 함께 많이 눈에 띄는 게 반미 그림이다. 미국과 성조기를 폭탄으로 공격하는 그림을 벽에 그려 넣은 고층 빌딩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옛 미국대사관 담벼락에는 자유의 여신상 얼굴에 악마를 그려 넣은 대형 그림도 있다. 그 옆에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호메이니의 길을 믿고 따르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란 정부는 시민들이 많이 찾는 팔레비국립공원에 친미성향이었다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전 국왕의 상반신을 없애고 다리만 흉하게 남긴 조형물을 세워놓기도 했다.

해골 그려넣은 자유의 여신상 성조기를 배경으로 몸은 자유의 여신상이지만 얼굴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해골을 그려 넣은 이 대형 벽화는 테헤란 시내 옛 미국대사관 담벼락에 그려져 있다. 테헤란=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해골 그려넣은 자유의 여신상 성조기를 배경으로 몸은 자유의 여신상이지만 얼굴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해골을 그려 넣은 이 대형 벽화는 테헤란 시내 옛 미국대사관 담벼락에 그려져 있다. 테헤란=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이번에 이란 정부는 자국의 시위 보도는 철저히 통제하면서도 이집트와 바레인의 반정부 시위는 적극 보도했다. 두 나라 모두 친미 성향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이란의 적잖은 중장년층은 물가 급등으로 민생이 어려워지고 심리적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세계의 대(對)이란 제재 때문이라 비판한다. 한 택시운전사는 “나는 반정부 시위에 반대한다. 지금 이란이 살기 어려워진 데는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미국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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