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운명, 부족장-관료-軍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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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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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년 독재’ 좌우할 3대 변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에 몰리고 있다. 시위 발생 9일째인 22일 일부 부족은 반기를 들고 군 내부에서도 동요가 일고 있으며 등을 돌리는 관료는 늘어만 간다. 카다피 원수의 42년 집권을 지탱해 온 기둥으로 그의 명운을 좌우할 주요 변수들이 요동치고 있다.

① 이반하는 부족사회


카다피 정권과 거리를 두려는 리비아의 부족이 늘고 있다. 21일 주요 부족 중 하나인 알와팔라와 동부 원유지대의 알주와야는 카다피 정권에 반기를 들었고 알진탄도 반정부 시위에 가담했다. 카다피 정권과 거리를 두려는 부족이 늘어나고 있다.

리비아는 크고 작은 500여 부족과 씨족으로 이뤄줬다. 이 중 강력한 10개 안팎의 부족이 군 정부 경제계 등의 요직을 나눠 갖고 있다. 리비아 국민은 자신의 정체성을 ‘리비아인’보다는 출신 부족에서 찾을 정도다. 따라서 주요 부족의 이반은 카다피 정권에 치명적 적신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카다피 국가원수가 권력 강화 수단으로 부족 간 경쟁을 유발하는 정책을 펴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카다피 국가원수는 군, 정부, 석유산업의 자리를 주요 부족들에 나눠줌으로써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따라서 주요 부족이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제쳐놓고 단합해 반카다피 전선에 나설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② 흔들리는 관료-반목하는 후계자들


21일 법무장관의 사퇴에 이어 카다피 국가원수 곁을 떠나는 주요 외교 관리들의 행렬은 22일에도 이어졌다. 미국 외교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는 “정권의 고위 관료들이 잇따라 카다피 국가원수를 비난하며 직을 떠나는 것은 리비아에 급진적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이 같은 현상이 카다피 신격화와 그에 대한 공포가 리비아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체제 유지의 한 축이었던 정권에 대한 국민의 공포가 더는 먹히지 않고 오히려 시위대가 카다피 국가원수를 조롱하기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체제 동요는 카다피 국가원수 일족 내부의 분란으로 이어질 가능이 있다. 7명이나 되는 카다피 국가원수 아들들의 반목은 주리비아 미국대사관에서 2009년 본부에 보낸 전문에서도 나타난다. 미 대사관은 “성격 안 좋기로 유명한 아들들의 내부 투쟁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차남이자 유력한 후계자로 알려진 사이프 알이슬람에 3남 사디, 4남 무타심, 그리고 벵가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공격한 군대를 이끄는 7남 카미스가 서로 갈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이슬람이 21일 전면에 나서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일족 내부 권력다툼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미 시사주간 타임은 분석했다.

③ 이탈하는 군대


반정부 시위가 촉발된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20일 군이 탱크를 시위대에 ‘헌납’한 데 이어 21일 시위대에 대한 발포명령을 받은 전투기 조종사는 항명을 했다. 독재정권의 주축인 군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직은 리비아군 전체에 균열이 생기는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견해가 많다.

군과 경찰 등 가다피 정권의 핵심 축인 무력기구에 소속된 인원은 전체 리비아 인구 600만 명 중 11만9000명이다. 모두 합쳐 4만5000명인 군과 경찰보다는 카다피 국가원수에게 헌신하는 비밀보안대와 혁명평의회운동, 그리고 카다피 국가원수의 아들들이 이끄는 특수부대가 무력기구의 주축이다. 이들 무력기구는 그동안 시위나 소요사태를 무력 진압하라는 카다피 국가원수의 명령을 어겨본 적이 없다. 따라서 외신도 군을 포함한 무력기구가 이집트에서처럼 정권과 시위대의 중재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하지 않는다. 코소보나 보스니아에서와 같은 대량학살을 우려하는 시각도 이 때문이다.

한편 이집트 시민혁명에서 이집트군을 통해 평화적 혁명 성공을 유도한 미국은 리비아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미칠 지렛대가 전무한 실정이다. 최근 수년간 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원조는 1070만 달러에 불과하고 군사원조는 없다. 수십 년간 숙적으로 지내와 리비아 정부 내에 별다른 끈도 없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폭력진압 중단하라” 반 총장, 카다피에 전화 ▼

베네수엘라 망명설이 돌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22일 모습을 드러냈다.

리비아 국영 TV는 이날 오전 2시경 22초간 카다피 원수의 모습을 내보냈다. 그는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우산을 직접 펴든 채로 “나는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트리폴리에 있다. ‘길 잃은 개들(stray dogs)’을 믿지 말라”고 말했다.

수척한 모습의 카다피는 “오늘 밤 나는 녹색광장에서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길 원했는데 비가 내린다”고 너스레까지 떨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고 인터뷰도 매우 짧아 장광설을 늘어놓던 예전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또한 귀덮개가 늘어진 방한모자를 눈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눌러썼고 차량 운전석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아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럽고 기괴한 분위기였다.

앞서 카다피 원수는 21일 오후 9시경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전화를 받고 40여 분간 통화했다. 반 총장은 카다피에게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카다피 원수는 “테러리스트들의 책동이며 최선을 다해 진압하겠다”고 말했으며 반 총장은 카다피에게 “국민을 보호하고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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