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이집트]‘포스트 무바라크’ 가속… 시위대 “軍, 국가와 정권중 선택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집트 시위사태가 갈수록 확산되고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면서 야권과 국제사회가 ‘포스트 무바라크’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태 귀결의 열쇠를 쥔 군에서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권고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군이 결국 무바라크 정권 유지를 위해 진압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는 움직임들도 나오고 있어 이집트 사태는 민주화 혁명 성공과 강경진압의 분기점을 향해 치닫는 형국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지도부를 만나 사태 수습책을 논의했다. 이집트 국영TV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군 장성들과 만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방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무바라크 대통령과 현 정부가 여전히 군을 장악하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거리에서는 장병들이 시위대와 친근하게 잡담을 나누고, TV 화면에선 군 장성들이 무바라크 대통령 뒤에 포진한 모습에서 보듯이 군의 태도는 모호하다. 이 때문에 시위 현장에서는 ‘군은 이집트와 무바라크 중 선택해야 한다’는 플래카드가 등장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군이 시위대와의 충돌을 피하려 하는 것이 시위대를 진정시키면서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권력을 승계할 시간을 벌어주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야권은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힘을 합치는 등 무바라크 이후를 위한 ‘새판 짜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야권은 시위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엘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을 과도정부 책임자로 내세우기로 합의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최대 야당단체인 무슬림형제단도 “엘바라데이가 정부와 협상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랍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시위대는 무바라크 정부 대신 군부와 협상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엘바라데이는 “이집트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질서를 되찾기 위해 군과 협력하기를 바란다”며 군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엘바라데이는 지난달 30일 카이로 중심부의 타흐리르 광장에 확성기를 들고 나타나 “새 시대가 오고 있다”며 시위대를 격려했다. 엘바라데이는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무바라크 대통령은 퇴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이후 임시 대통령을 맡을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가교로서 내가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은 이집트 사태의 해법으로 ‘질서 있는 전환(orderly transition)’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30일 “미국은 민주주의로의 질서 있는 전환과 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권좌에 있는 무바라크 대통령과 이집트에서 존경을 받는 군이 이 같은 질서 있는 전환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나 무바라크 대통령의 거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31일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무바라크 정권이 물러나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신문은 전현직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다른 동맹국에 미칠 여파를 감안해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공식적으로 거론하지는 않고 있지만 그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