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전 클린턴처럼… 오바마 정국주도권 되찾을까

  • 동아일보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을 공화당에 빼앗겨 고전을 면치 못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애리조나 주 투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정국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8년 대선후보 때 “증오하고 대결하는 워싱턴 정치를 바꾸자”며 워싱턴의 정치문화 개혁을 역설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25일로 예정된 의회 신년 국정연설에서 이번 총격 사건을 거론하면서 “증오와 대결정치를 청산하자”고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미 국민 전체에 아픔을 안긴 사건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측에 호재인 셈이다. 실제로 1994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이듬해 4월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사건을 자신의 정치력을 회복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활용했다. 당시 이 사건으로 다수당이던 공화당은 테러 용의자가 우익민병대와 관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적 곤욕을 치른 반면 클린턴 대통령은 ‘단합과 통합’을 외치며 사건을 잘 수습하는 등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번 사건 발생 후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도 오바마 대통령이다. 총기난사 사건 발생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로버트 뮬러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현지에 내려보내 수사를 지휘하도록 했다. 또 일요일 밤에는 가브리엘 기퍼즈 의원의 남편인 해군조종사 마크 켈리 씨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했다. 10일에는 뉴욕에 있는 제너럴일렉트릭사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오전 11시 백악관 남쪽 정원에서 미셸 오바마 여사와 함께 전국적으로 진행된 추모 묵념을 이끌었다. 또 12일에는 애리조나대에서 열리는 총격희생자 추모식에 참석하고 중상을 입은 기퍼즈 의원을 병문안할 계획이다.

총기난사 범인인 재러드 리 러프너의 범행 동기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은 워싱턴의 정치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퍼즈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건강보험개혁법의 적극적인 찬성자였다. 지난해 4월 미국 전역에서 거셌던 건강보험개혁법 찬반 논란의 중심에 서는 바람에 그의 사무실은 42차례나 위협과 협박을 받았다. 기퍼즈 의원은 당시 MSNBC 방송에 출연해 “최근 20∼30년간 정치를 한 동료도 요즘과 같은 정치적인 환경을 일찍이 겪지 못했다”며 증오와 독설정치를 비난했다.

미 언론도 정치권의 독설이 이번 참사를 불렀다고 보도하고 있어 그동안 민주당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온 글렌 벡, 러시 림보 씨 등 보수우파 논객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티파티 운동을 주도하면서 선동적 발언을 서슴지 않은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등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도 선동적인 발언으로 대중을 자극하면서 대결과 증오의 정치를 조장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곤경에 처한 공화당은 12일 예정된 건강보험개혁법 폐지법안 표결을 연기하고 여론의 향배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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