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 소년을 인간방패로’… 이스라엘軍반인륜범죄 사실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5일 03시 00분


‘폭탄의심 가방’ 열도록 강요… 이, 병사 2명에 유죄 판결

2008∼2009년 이스라엘군과 이슬람 강경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에 벌어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이 9세짜리 팔레스타인 소년을 위협해 폭탄으로 의심되는 가방을 먼저 만지도록 ‘인간방패’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의혹이 이스라엘 군사법원의 유죄판결을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이스라엘 남부사령부 군사법원은 3일 자국군 소속 병장 2명이 지난해 1월 15일 가자지구의 한 건물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소년 마지드 군에게 부비트랩(건드리면 터지는 위장 폭탄)이 설치된 것으로 의심되는 가방을 열도록 강요한 점이 인정된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법원은 이들이 복역할 형량은 나중에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스라엘 인터넷매체 와이네트는 정예부대 ‘지바티’ 소속이었던 이들이 최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한 이스라엘군의 범죄행위에 대해 중죄가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피해 소년인 마지드 군은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가방을 열었다고 한다. 그는 이스라엘 병사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가운데 첫 번째 가방을 열어 바닥에 쏟았는데 돈과 서류가 나왔다고 진술했다. 이어 두려운 나머지 두 번째 가방 열기를 주저하자 이스라엘 병사가 자신을 비켜서게 한 뒤 가방에 총격을 가했다는 것. 다행히 폭발물은 없어 마지드 군은 다치지 않고 부모에게 돌아갔다.

판사는 이날 공판에서 “소년은 당시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위축됐다”며 “군인들과 달리 아무런 보호장비도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투상황은 힘을 부당하게 사용한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군 라디오방송은 유죄판결을 받은 병사 전우들이 항의의 뜻으로 ‘우리는 모두 골드스톤의 희생자다’라고 적힌 셔츠를 입고 법정에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골드스톤은 유대인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판사 이름으로 지난해 9월 이스라엘군의 전범 혐의와 반인륜적 범죄 혐의를 담은 가자지구 전쟁보고서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인물이다. 유엔은 지난해 11월 총회에서 이 보고서를 공식 승인했다. 이스라엘은 골드스톤 보고서가 편향됐다고 비판했으며 이후 이스라엘군이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2008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의 침공으로 22일간 진행된 가자지구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1400여 명과 이스라엘인 13명이 각각 숨졌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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