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 20년’ 경험에서 배운다]<1>정치외교 슈퍼파워 독일

동아일보 입력 2010-09-20 03:00수정 2010-09-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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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경제도 자연도… 상처 있던 자리에 새살이 돋다
동-서독 철책선이 있던 곳 서독 바이에른 주와 동독 튀링겐 주 사이의 프로프슈첼라의 경계 지역. 철책선을 걷어내고 지뢰만 제거한 지역에서 20년이 지나자 10∼20m 높이의 전나무 숲이 형성됐다. 짙은 초록색은 나무가 이미 다 컸기 때문이고 철책선의 연한 초록색은 같은 나무지만 젊기 때문. 동서독의 융합을 보여주는 자연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프로프슈첼라=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독일이 통일을 이룬 지 다음 달 3일로 20년이 된다. 독일은 통일을 위해 비싼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분단비용이 사라지고 통일편익이 늘어나면서 독일은 내부 통합과 경제 재건을 넘어 세계 초강대국으로 국제정치 무대에 우뚝 섰다. 최근 한반도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통독 20년의 정치 경제 사회적 ‘성공스토리’와 그것이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20세기 전반 반세기 독일은 ‘갈등의 불씨(the Cause of Conflict)’였다. 후반 50년은 ‘갈등의 중심(the Center of Conflict)’이었다. 통일독일은 이제 세계 평화와 안전의 수호자다.”

독일 통일 20주년을 맞아 세계 13개국 15명의 기자를 초청한 독일 외교부의 한스 크리스티안 라이브니츠 공보국장은 17일 독일의 외교정책을 설명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통일 전 독일은 ‘완전한 자주권’이 없었고 독일의 미래는 여전히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 4개국이 갖고 있었다”며 “하지만 독일 통일에 앞서 1990년 9월 12일 조인된 ‘2(동·서독)+4조약’을 통해 독일은 완전한 주권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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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3일 독일연방 국방부 청사를 방문했을 때 왼쪽 건물 벽엔 ‘평화를 위한 파병(Im Einsatz f¨ur den Frieden)’이라는 표어와 함께 해외로 파병되는 독일 군인의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독일의 외교적 자신감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이미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로 변모했다.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의 해결책을 놓고는 미국과 확연하게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라크 이란 등 국제 군사·외교 문제에서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도 최근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이에 따라 주변국의 의혹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일본이 ‘보통국가론, 정상국가론’을 내세웠듯 독일 역시 ‘평화수호자’라는 명분으로 점차 세력을 확대하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다.

독일 역시 이를 의식해 공적개발원조(ODA) 액수를 크게 늘리고 독일 내에서 전술 핵무기를 완전히 없애는 등 평화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8년 독일의 ODA 원조액은 139억 달러로 미국(260억 달러)에 이어 2위다.

통일독일의 위상이 이처럼 크게 제고되면서 통독의 주역들도 재평가돼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에서 만난 대부분의 인사는 헬무트 콜 전 총리(재임 1987∼1998년)를 칭찬했다. 페터 비터라우프 한스자이델 재단 사무총장은 “콜은 동독에 많은 돈을 줬지만 반드시 조건을 걸고 동독이 대가를 지불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콜은 동독을 아래로부터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내부의 정치 통합도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됐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2005년 취임)와 볼프강 티어제 독일연방 전 하원의장(재임 1998∼2005년)이 동독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갖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반응이었다. 한 현지 대학 교수는 “이제 출신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다 독일사람”이라고 말했다.

독일 정부와 지도자들은 통독 20주년을 맞아 슈퍼파워로 떠오른 독일의 정치 외교적 성과를 전 세계에 홍보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최근 제작한 ‘독일을 새롭게 발견하십시오’란 홍보영상물에서 “독일은 국가별 브랜드가치 세계 1위, 유럽 최대의 경제 무역강국”이라고 자랑했다.

위르겐 클림케 독일연방 하원의원(기민-기사연합)은 앞서 8일 서울 중구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독일 통일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통일 덕분에 유럽무대에서 독일의 외교적 정치적 지위가 향상됐다”며 “독일은 서유럽과 동유럽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되면서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활력을 불어넣는 엔진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라이프치히=하종대 기자, 도움말=서재진 통일연구원장
▼ “분단으로 인한 손실이 통일비용의 1.5배 넘어” ▼

군사비-징병손실 등 포함 분단비용 한해 44조 추정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틀 후인 11일 서독 쪽 시위대가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 베를린 장벽 한쪽을 뜯어내자 그 틈으로 서 있던 동독 국경수비대 병사의 모습이 드러났다(위쪽 사진). 베를린에서 과거의 장벽 보존이 가장 잘돼 관광명소가 된 이 스트사이드갤러리. 베를린=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독일 통일 20년의 성과는 일차적으로 분단비용이 사라졌기 때문이고 통일 이후의 편익이 높아진 결과다. 그렇다면 아직 분단 상태인 한국은 어떤 비용을 치르고 있고 통일이 되면 어떤 편익을 기대할 수 있을까.

분단비용은 분단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유무형의 비용이다. 유형적 측면의 비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비용이다. 대규모 국방비, 북한 지역을 활용하지 못하는 기회비용 등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적용하는 컨트리리스크의 상승, 전쟁을 우려한 외국인의 투자 기피가 낳는 기회비용도 크다. 분단으로 인한 끊임없는 전쟁의 위협, 이산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이념적 질곡과 남남갈등이 낳는 정치 사회 경제적 비용 등 무형의 비용도 심각한 수준이다.

분단비용의 수치화는 통일비용 계산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신창민 중앙대 명예교수는 2007년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분단비용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65%로 추산했다. 지난해 한국의 GDP가 약 8300억 달러였으니 2009년 한 해에만 약 386억 달러(44조7567억 원)에 달하는 분단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신 교수는 통일한국의 군비 지출 수준을 GDP 대비 1%라고 보고 한국이 분단상태에서 오랫동안 GDP의 3% 선에서 군비를 지출해 왔음을 감안할 때 통일로 2%포인트의 군비 감소가 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한국의 군 병력인 69만 명은 통일 이후 10만 명까지 감축될 것이기 때문에 59만 명이 산업 인력으로 투입될 수 있으며 이는 GDP의 2.65%에 해당된다고 분석했다.

정갑영 연세대 교수는 2000년 당시 분단비용이 국민소득(GNI)의 약 4%라고 분석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1997년 당시 총 누적 분단비용을 175조 원으로 추산했다.

분단비용은 이처럼 전문가마다 다르게 산출된다. 정부도 1990년대 말 이후 분단비용을 산출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분단비용이 통일비용보다 훨씬 크다는 데는 대부분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한다. 신창민 교수가 2015, 2020, 2025, 2030년 각각 통일되는 경우를 가정해 통일비용을 산출한 결과 8577억∼1조3227억 달러로 나타났다. 반면 각각의 시기에 통일이 되지 못했을 때 각각 그 후 30년간 지불해야 하는 분단비용은 1조3123억∼1조8886억 달러에 달했다. 물론 독일의 경우 통일비용으로 매년 GDP의 1.5%가 지출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매년 GDP의 약 4%가 쓰인 점을 감안하면 통일비용은 예상치보다 훨씬 커질 수도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통일전에는 상상도 못할 함포외교 등 주권 회복” ▼
‘통독의 성과’ 기고


독일은 통일 이후 20년 동안 다양한 어려움을 인내하고 극복하여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강력한 주권국가를 건설했다.

우선 정치적 주권을 완전히 회복했다. 2003년에 발발한 이라크전쟁에 미국은 독일의 참전을 간절히 요구했지만 독일은 국가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끝내 외면했다. 통일 이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독일은 통일 직후인 1991년에 벌어진 걸프전쟁에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즉각 참전했다.

현재 독일은 국제무대에서 국력에 걸맞은 정치 외교적 역할을 다하려고 하며 그 방법의 하나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통일 이전 서독은 평화헌법에 의해 자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이 침략을 당한 경우에 한해서만 무력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일된 독일은 1999년 나토 동맹국도 아닌 유고 사태에 전투병을 파견하고 공습을 감행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초의 대외 파병이었고 유엔의 헬멧을 쓰지도 않은 참전이었다. 국외에서의 군사력 사용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제 독일은 국가 이익에 따라 전투병을 파견하는 것이다.

올해 5월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독일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에서의 군사작전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후 사임했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얘기했기 때문에 문제가 됐고 국내외 여론을 의식하여 사임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른바 ‘함포(艦砲) 외교’는 이제 독일의 대통령조차 당연시하는 정서가 독일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다. 역시 통일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 독일 통일의 어려운 점이 부각돼 우리의 통일 의지를 침식시키고 통일에 대한 우려와 부정적 의식을 심어준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때다. 통일은 이산가족의 상봉이나, 분단의 극복이란 차원을 벗어나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주권국가를 확고히 세우고 우리민족이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평화통일의 기회가 한반도에 찾아온다면 가능한 한 신속하게 통일을 이룩하고 통일이 우리에게 가져올 수 있는, 우리가 통일 이후에 이룩할 수 있는 엄청난 행복을 바라보며 꿋꿋하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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