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제로 ‘갈라진 美國’으로 얼룩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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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 엄숙한 추모식과 달리 곳곳서 ‘모스크 찬반’ 대립… 일부는 코란 불태우기도

9·11테러 9주년을 맞은 미국은 1년 전인 8주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했던 테러를 기억하며 정치적 이견을 넘어 서로 위로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제로에서 미국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11일(현지 시간) 첫 번째 비행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 중 하나를 강타했던 오전 8시 46분 그라운드제로 현장에서는 2752명의 9·11테러 희생자의 이름이 하나하나 불렸다. 수백 명의 사람이 기념식장에 모여 희생자를 위해 촛불에 불을 붙이고 꽃을 던졌다. 여기까지는 지난 8년 동안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기념식 행사장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면 그라운드제로 인근에 건립이 추진되는 이슬람 사원(모스크)에 반대하는 피켓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한 피켓에는 ‘우리는 당신들(희생자)을 사랑한다. 그라운드제로 바로 옆에 이슬람 사원? 우리가 막겠다’라고 씌어 있었다.

오전까지도 추모 열기에 묻혀 비교적 조용하던 분위기는 희생자들의 이름 연호가 끝날 때쯤인 낮 12시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모스크 건립 예정지에서 한 블록 떨어진 뉴욕시청 주변에서 2000여 명이 모스크 건립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슬람 탄압은 인종주의며 종교탄압은 없어야 한다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인근 모스크 건립 예정지 주변에는 1500여 명의 반대파가 모였다. 연단에 설치된 영상시설에는 네덜란드 정치인으로 반(反)이슬람자유당 당수인 거트 와일더스 의원과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 등도 등장했다. 와일더스 의원은 “더 이상의 관용은 있을 수 없다”며 모스크 건립을 준비한 이맘(이슬람 성직자) 파이잘 압둘 라우프 씨를 겨냥해 “그의 이런 행동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우리에게 모욕을 준 것”이라고 공격했다. 경찰은 모스크 건립 찬성파와 반대파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병력을 대거 투입해 시위대를 에워싸 폭력 양상으로 번지지는 않았으나 시위는 오후 내내 계속됐다.

이날 코란을 불태우겠다고 밝혔다가 철회한 테리 존스 목사의 플로리다 주 게인즈빌의 교회 ‘도브 월드 아웃리치 센터(Dove World Outreach Center)’ 주변에서도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은 특수기동대를 교회 정문 앞에 배치하고 주변 도로를 모두 차단해 사람들의 교회 접근을 막았지만 시위대는 주변에서 이슬람에 대한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시위를 벌였다.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는 복음주의 목사 밥 올드 씨와 그의 동료가 “이슬람은 나쁜 종교”라며 라이터 기름을 이용해 코란 두 권을 불태우기도 했다. 이날 백악관 앞에서도 일부 기독교도가 코란을 찢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모스크 건립 옹호 방침을 비난했다. 모스크 건설 반대파의 집중 공격을 받은 라우프 씨는 12일 방영된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존스 목사가 코란을 불태웠다면 대재앙이 초래됐을 것”이라며 “만약 그라운드제로의 모스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면 무슬림들에게 나쁜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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