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다이아몬드’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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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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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모델 캠벨, 전범법정서 阿독재자 테일러 관련 증언“13년전 더러운 돌조각 2, 3개 받았지만 친구에게 줬다”


13년 전인 1997년 9월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 자택. 만델라가 주최한 만찬에 흑인 톱모델 나오미 캠벨(사진), 유명 영화배우 미아 패로, 음악가 퀸시 존스 등 연예계의 거물이 대거 나타났다. 만찬은 케이프타운에서 프리토리아에 이르는 대초원을 관통하는 관광열차 ‘블루트레인’의 개통식에 맞춰 만델라가 자신의 자선재단 후원자들을 초청해 첫 기념 탑승식을 가진 다음 날 열린 것이었다. 평소 만델라를 ‘존경하는 대부’로 부르는 캠벨은 만델라재단의 홍보대사였다.

여기에는 그 직전 대통령 직에 오른 찰스 테일러 라이베리아 전 대통령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난 캠벨과 테일러는 만찬 시작 전부터 많은 얘기를 나눴다. 만찬 때도 둘이 이웃해 앉았다. 전범 재판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의 전 독재자와 세계적인 톱모델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슈퍼모델 캠벨이 5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전범재판소에 증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캠벨은 전쟁 범죄 피의자인 테일러로부터 ‘블러드 다이아몬드’(아프리카 내전 지역에서 생산돼 전쟁 비용으로 소모되는 다이아몬드를 지칭)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SCSL) 검찰은 올 초 재판에서 1997년 9월 테일러는 시에라리온 반군으로부터 받은 다이아몬드를 현금화하고 무기와 교환하기 위해 남아공에 가져갔으며 만찬 후 캠벨에게 다이아몬드를 줬다. 이 사실은 패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테일러는 1991∼2001년 접경국인 시에라리온 내전 때 반군조직인 혁명연합전선(RUF)이 저지른 민간인 테러의 지원 및 교사와 살인 강간 등 11가지 반인륜 범죄와 전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지난 3년간 세계 언론의 무관심 속에 진행돼 온 이 재판이 캠벨 때문에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문제의 만찬 때 캠벨과 테일러의 맞은편에 앉아 이를 지켜본 패로와 캠벨의 에이전트 캐럴 화이트 씨도 9일 증언에 나선다. 화이트 씨는 검찰에 서면으로 제출한 증언에서 “캠벨과 테일러는 다이아몬드에 관해 대화했으며 테일러가 캠벨에게 ‘다이아몬드를 주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패로는 캠벨이 만찬 다음 날 아침 식사에서 “어젯밤 낯선 남자 2, 3명이 다이아몬드를 주고 테일러 대통령이 보냈다고 말했다”고 재판소에 서면으로 진술했다.



검찰의 조사를 거부해 온 캠벨은 지난달 재판소가 “법정 모독 혐의로 최대 7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고 경고하자 태도를 바꿨다. 캠벨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네덜란드에 도착해 재판소로 이동하거나 재판소를 드나드는 도중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고 재판소 측은 재판소 출입 때 취재진의 촬영을 금지했다.

베이지색 투피스를 입고 재판정에 나타난 캠벨은 “만찬 후 방에서 자는데 누가 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두 남자가 작은 주머니를 주면서 ‘선물’이라고 말해 침대 옆에 놓고 잤다. 다음날 아침 그 안에서 ‘작고 더러워 보이는 돌조각’ 2, 3개를 발견했다”며 “패로와 화이트는 ‘테일러가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고, 나도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캠벨은 또 “내가 갖고 싶지 않아 만델라 재단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주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나는 자주 선물을 받기 때문에 그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캠벨은 이날 다이아몬드라고 칭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받았다고 인정함으로써 검찰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1997년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자택에 모인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5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전범재판소 재판 과정에서 공개됐다. 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나오미 캠벨,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 만델라 전 대통령, 만델라의 부인 그라사 마셸. 오른쪽에서 세 번째는 음악가 퀸시 존스, 두 번째는 배우 미아 패로. 사진 출처 CNN
1997년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자택에 모인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5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전범재판소 재판 과정에서 공개됐다. 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나오미 캠벨,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 만델라 전 대통령, 만델라의 부인 그라사 마셸. 오른쪽에서 세 번째는 음악가 퀸시 존스, 두 번째는 배우 미아 패로. 사진 출처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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