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에 90도 머리 굽혀, 정책 180도 바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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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간 총리내각 인기 비결… 현실주의 노선으로 급선회

[1] 경제-재정정책 포커스… 세제 개혁안 밀어붙여
[2] 친미 외교안보노선 채택… 후텐마 불협화음 씻어
[3] “관료는 정책의 프로다”… 하토야마와 달리 중용

黨일각 보수회귀에 불만… 내달 참의원 선거 분수령


간 나오토(菅直人) 신임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최고 68%까지 치솟았다. 정권 출범 당시 지지율로는 역대 5위다. 불과 한 달 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내각 지지율 22%보다 46%포인트나 급등했다. 간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이처럼 수직상승한 데는 무엇보다 간 총리의 대담한 인적쇄신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하토야마 내각의 발목을 잡아온 정치자금 문제를 탈(脫)오자와 인사로 정면 돌파했다.

높은 지지율에 힘입은 간 총리는 이제 현실주의 노선으로 정책을 급선회하고 있다. 그는 당이 17일 발표한 참의원 선거공약에서 ‘강한 경제와 강한 재정’ ‘대미관계의 심화’ 등 이른바 보수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해 8월 30일 중의원 선거에서 성장보다는 복지, 대등한 미일관계를 앞세웠던 민주당 공약과 180도 달라졌다. 간 총리는 정치적 맹우인 하토야마 전 총리의 정치적 후계자임을 강조하지만 정작 정책방향은 이전 내각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를 두고 야당인 자민당은 “선심성 공약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며 비판한다.

○ 이상주의에서 현실주의로

간 총리가 경제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에서 현실주의로 과감히 돌아선 것은 하토야마 내각과 차별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콘크리트에서 인간으로’ ‘대등한 미일관계 구축’이라는 핵심 공약으로 사실상 첫 정권교체를 이뤘다. 하토야마 총리는 국민의 감정에 호소해 표심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구체성이 결여된 공약은 차츰 동력을 잃었다. 취임 당시 70%대의 지지율은 8개월여 만에 10%대로 떨어졌다. 간 총리는 ‘정책을 내놓기만 하고 수습하지 못하는’ 하토야마 내각으로부터 변신이 다급했다.

특히 간 총리의 현실주의 노선은 이번 선거공약에서 이른바 ‘먹고사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경제와 재정정책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재무상을 지내면서 익힌 현실감각이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재무상 재임 당시 “국가예산을 더는 국채발행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하토야마 총리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비세 인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의 재정상황은 정상적인 국가로 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다. 일본은행이 집계한 3월 말 현재 자금순환통계에 따르면 국채와 지방채를 합친 채무가 1001조7715억 엔(약 1경300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에 이른다.

대표적인 반(反)관료주의자로 알려진 간 총리가 취임 당시 “관료야말로 정책의 프로”라며 관료 중용설을 들고나온 것 역시 현실주의 전환의 단면이다. 하토야마 내각이 ‘정치 우위-관료 배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관료의 심리적 이탈을 초래했고 결국 국정운영의 차질로 이어졌다고 본 것이다. 그는 정치 주도의 의미를 “관료와 정보를 공유하면서 하나가 되자”는 것이라며 재해석하기까지 했다.

○ 보수가치 회귀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아

참의원 선거 공약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균형보다 성장, 복지보다 세수 우선 확보 등 보수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현행 5%인 소비세율을 10%로 올리는 등 대대적인 세제 개편안을 내놓았다. 공약집에는 “소비세를 포함한 세제의 근본 개혁 협의를 초당파적으로 개시한다”라고만 돼 있지만 간 총리는 공약 발표석상에서 10% 인상안을 전격 제시했다.

하토야마 내각에서는 선언적 수준에 그쳤던 중기 경제성장률 목표와 기초재정수지 흑자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 그는 2020년까지 평균 명목성장률을 3% 이상 달성하고 국채발행에 따른 이자비용과 수입 등을 뺀 기초재정수지의 흑자화를 달성하겠다고 명언했다. 또 그동안 세금 퍼주기 논란을 불러왔던 가솔린 등 유류세 폐지와 고속도로 무료화에도 제동을 걸었다. 핵심 복지공약인 ‘아동수당’도 당초 목표인 월 2만6000엔 지급을 포기했다.

후텐마 문제로 미국과 불협화음을 낳았던 미일 외교안보노선도 친미 현실주의 노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토야마 내각은 재일 미군기지의 재검토를 공약에 넣었지만 간 내각은 후텐마 기지를 미일 합의에 따라 원안대로 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보수회귀 전략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소비세 인상에 대해서는 당내에서조차 총리가 너무 앞서간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자민당에서는 “지난해 선심성 공약을 앞세워 정권을 잡은 민주당이 슬그머니 공약을 철회하면서 성장과 경제라는 보수적 가치로 돌아서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 [핵심공약 ‘소비세 인상’ ] 과거엔 정권의 무덤… 이번엔?


간 나오토 내각의 핵심 정책공약 중 하나인 소비세 인상은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을까. 소비세 인상은 역대 일본 정권의 ‘무덤’이었다. 섣불리 꺼냈다가 정권을 내놓아야 했던 사례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소비세 논의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2차 오일쇼크 직후인 1978년. 재정위기가 우려되자 당시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총리가 신설을 추진했다가 이듬해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해 정권을 내주어야 했다. 8년 뒤인 1986년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이 5% 인상안을 도입하기로 했다가 철회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각은 ‘공약을 뒤집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3년 뒤인 1989년 4월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총리가 우여곡절 끝에 소비세 3%를 인상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바통을 이어받은 우노 소스케(宇野宗佑) 총리가 여성 스캔들 문제에 휘말리면서 민심이 악화된 가운데 소비세 인상 유탄까지 맞아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에 대패하게 된다.

비(非)자민 연립정권으로 탄생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내각은 1994년 갑자기 소비세를 국민복지세로 바꿔 7% 인상을 추진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혀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기도 했다. 같은 해인 사회당과 자민당이 연립해 출범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내각은 5% 인상법안을 통과시켰다가 1996년 중의원선거에서 사회당이 참패했고, 이를 시행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역시 1998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권력을 내놓아야 했다.

이처럼 일본 정치에서 소비세와 표심의 질긴 악연을 알고 있음에도 간 나오토 총리의 추진 의사는 확고하다. 여론도 긍정적이다.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이 66%로 반대(29%)를 압도한다. 이 같은 여론에 힘입어서인지 간 총리는 17일 선거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세제를 크게 바꿀 경우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며 경우에 따라 중의원을 해산해 총선거를 실시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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