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동아논평]그리스를 보며 우쭐할 때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1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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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가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이 재정위기로 구제 금융을 받는 그리스에게 한국을 배우라고 충고했습니다. 페섹은 "그리스는 악몽과 같은 이번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한국의 위기극복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사에서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 같은 민중의 노력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빠르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페섹은 불과 4,5년 전 한국에 경고를 퍼부었던 인물입니다. 2006년에는 한국도 1990년대의 일본처럼 10년 불황이 올 수 있다고 했고, 재작년 세계 금융위기 때는 한국을 아이슬란드에 비유했다가 나중에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에 비판적이었던 그가 한국을 모범 사례로 칭찬하다니 우쭐할 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페섹의 칭찬을 듣고 방심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의 말대로 한국의 금모으기 운동은 칭찬받을 일입니다. 성실한 국민의 모범적인 태도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1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입니다. 더구나 다시 경제위기가 찾아왔을 때 금모으기 운동을 또 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국민의 호응도 과거 외환위기 때만 못하고, 효과도 기대 밖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1997년의 외환위기와 지금 그리스가 처한 재정위기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는 달러는 부족했지만 재정상태는 튼튼했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앞으로 그리스와 비슷한 재정 위기를 겪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리스보다 여건이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는 유럽연합과 유로화를 같이 쓰는 16개 유로존 국가들이 울타리 역할을 해주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성공을 시기하는 이웃들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처럼 좋은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우리 재정이 건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처럼 도와줄 든든한 이웃이 없습니다. 우리의 지방재정은 자립도가 53%에 불과할 정도로 취약합니다. 외국에 비해 괜찮다고만 해서는 안됩니다. 방만한 재정을 개선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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