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90주년/석학 인터뷰]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大 경제학과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일 03시 00분


“美, 재정지출-저금리로 버티는 중… ‘더블딥’ 위험 크다”

미국의 원로 경제석학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에도 강의와 정부 정책자문, 각종 콘퍼런스 참석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명예소장이기도 한 펠드스타인 교수는 “현재 미국 경제의 성장세는 대규모 재정확대와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유지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것”이라며 올해 미국 경제에 더블딥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케임브리지=신치영 
특파원
미국의 원로 경제석학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에도 강의와 정부 정책자문, 각종 콘퍼런스 참석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명예소장이기도 한 펠드스타인 교수는 “현재 미국 경제의 성장세는 대규모 재정확대와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유지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것”이라며 올해 미국 경제에 더블딥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케임브리지=신치영 특파원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에 직면했던 미국 경제는 대규모 재정지출과 유례없는 저금리로 버텨 왔습니다. 두 정책의 효과가 사라지는 올해는 미국 경제에 큰 고비가 될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더블딥’(일시적으로 성장하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것)의 위험도 적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제석학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71)는 미국 경제를 다소 비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펠드스타인 교수는 미국이 안고 있는 재정적자의 위험을 버락 오바마 정부가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을 밀어붙인 데 대해서는 “정부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9일 전미경제연구소(NBER) 명예 소장을 맡고 있는 그를 하버드대 인근 NBER 사무실에서 만나 미국 경제와 글로벌 경제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들어봤다.

―침체에서 벗어나는 듯했던 미국 경제가 아직도 확실한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미국 경제가 작년 여름부터 회복기로 접어든 것은 분명하다. 회복이 매우 더디게 이뤄지고 있지만 분명 성장을 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성장이 정상적인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 경제의 회복은 정부의 일시적인 경기부양 자금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유례없는 확장적 통화정책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부양정책은 끝날 때가 됐다. FRB의 유동성 지원 조치들은 곧 마무리된다. 자동차나 부동산 구입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도 끝난다. 이렇게 되면 미국 경제의 회복세도 약화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여러 경제학자나 전망기관들이 올해 3.0∼3.5%의 성장률을 거론하지만 어려울 것으로 본다.”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해 왔는데,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

“그렇다. 오바마 정부가 경기부양 자금을 8000억 달러 이상 쏟아 부었지만 총수요가 크게 늘지 않았고 일자리 창출 효과가 너무 떨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원들이 자신이 쓰고 싶은 곳에 경기부양 자금을 쓰도록 지나치게 재량권을 줬다.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키겠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재 미국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중소기업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건 향후 1년 이내의 단기는 물론이고 앞으로 수년간 미국 경제를 괴롭히는 문제가 될 것이다. 대기업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직접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은행 대출에 의존한다. 그런데 은행들, 특히 지방의 소규모 은행들이 주택 모기지와 상업 모기지로 인한 손실이 커질 것을 우려해 대출을 조이고 있다. 중소기업이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투자를 할 수도 없고 채용을 할 수도 없다.”

車-부동산 구입 보조금 지급 끝나면
美경제 회복세 약화… 3%성장 힘들어
中企엔 돈 안돌아 신규채용 엄두못내


―미국의 재정적자 급증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그렇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급등하고 있다. 정부가 향후 10년 동안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비율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정적자 감축의 한 처방으로 2011회계연도부터 3년간 재량지출(필요할 때마다 입법을 통해 이뤄지는 지출)을 동결하겠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여러 가지 지출 프로그램을 추진할 권리를 가진 의회와 합의하지 않는 사항이라는 점도 그렇고, 3년이 지나면 ‘그동안 지출을 동결했으니 지출이 더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의원들도 있을 것이다. 필요한 지출도 많을 텐데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전부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건보 개혁도 재정적자를 늘리는 요인이 되지 않겠는가.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 오바마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지 우려된다. 재정적자 감축이라든지 일자리 창출 등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 많은데 오바마 대통령은 건보 개혁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반수 이상의 미국인들이 건보 개혁을 원하지 않는다. 물론 국민이 원하지 않아도 지도자가 추진해야 하는 일이 있다. 국가안보를 위한 군사력을 증강한다든지, 미군을 위험지역에 파견한다든지 국민이 지지하지 않아도 대통령으로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건보 개혁의 수요자는 국민이다. 국민이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는 중요한 기준이다.”

―사실 미국의 건강보험 시스템은 문제 있는 것 아닌가.

“맞는 얘기다. 나도 건보 개혁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건보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고 컨센서스를 이뤄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향후 10년 동안 수조 달러가 필요한 문제 아닌가.”

―미국의 재정적자가 늘어나면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고 미국의 영향력도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것은 분명하다. 달러화 가치는 지난 수십 년간 하락했다. 물론 간혹 금융위기 같은 불안감이 시장에 확산되면 일시적으로 달러화 가치가 올랐다. 하지만 달러화 가치 하락이 대세였다. 그러나 달러화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미국의 영향력이 달러화 가치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군사력은 강력한 지지대다. 미국이 멕시코 일본 한국 등 우방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줄인다면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은 분명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국방비 지출은 GDP의 4%에 불과하다. 군사적 지원 비용은 사실 크지 않다. 우방국의 군사 지원은 유지될 것이고 미국의 영향력도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저축률 높고 외환보유액 충분
1990년대 환란 가능성 거의없어
對中수출 늘어나 성장세 유지할 것


―미국의 금융개혁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른바 ‘볼커 룰’로 불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금융개혁 방향은 자기매매 금지와 대마불사 등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아직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명확하지가 않다. 자기매매 금지는 골드만삭스 정도는 영향을 받겠지만 다른 은행들은 규모가 크지 않아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대마불사는 금융회사의 덩치를 작게 하겠다는 이야기 같은데, 그렇다고 씨티그룹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쪼개야 한다는 주장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마도 월가에 비판적인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대마불사가 인위적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반대한다. 은행들이 고객의 수요에 맞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FRB 의장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데 FRB가 비판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FRB는 비판받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2000년대 초에 금리가 너무 낮았다. 사람들이 돈을 빌려 부동산 등 자산 투자에 나섰고, 은행 등 전문 투자자들은 고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익을 내려 했다. 또 ‘시장에 대한 감독자’로서도 실수를 했다. 감독자의 가장 큰 업무는 부실 자산을 찾아내고 자본건전성이 유지되도록 해야 하는데 FRB는 두 가지를 모두 소홀히 했다.”

―FRB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보나.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시장에 대한 감독자로서 FRB보다 더 일을 잘할 기관이 없을 것 같다. 재무부나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다른 기관에 맡길 순 없다. 작년에 월스트리트저널에 FRB의 은행감독 실패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더니 FRB에 있는 후배들이 ‘우리에게는 은행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 은행 감독은 주정부 등 다른 곳에서 한다’고 하소연하더라. 실제로 현재 대형 은행지주회사는 FRB가 감독하고, 지주회사 내에 있는 은행은 FRB 권한 밖이다. 감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금융개혁 이후에는 FRB가 은행지주회사와 은행 자회사들을 모두 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

―유로화 창설을 반대했었는데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생각은….

“유로화가 창설된 지 10년이 됐다. 나는 유로화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회원국의 사정이 모두 다른데 금리와 환율을 똑같이 쓴다는 건 맞지 않다. 한국이나 미국은 재정적자가 발생하면 시장에서 피드백이 일어난다. 금리가 오르고 화폐가치는 떨어진다. 하지만 유로존의 회원국, 예를 들어 그리스는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해도 시장에 피드백이 안 된다. 금리도 환율도 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재정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나.

“한국 대만 싱가포르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괜찮다. 그리스와는 정반대 상황이다. 무역흑자를 많이 내고 있고 외환보유액도 많이 쌓았다. 저축률도 높다. 현재 상황으론 한국이 1990년대 외환위기 같은 수준의 위기를 다시 겪을 가능성은 없다.”

―한국 경제의 성장 가능성은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 나는 한국 경제가 이렇게 빨리 정상적인 성장 궤도에 올라설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 경제의 성장은 중국보다는 미국이나 유럽 시장으로의 수출이 살아나야 가능할 것으로 봤는데 내 예상이 틀렸다. 중국이 성장하면서 한국의 수출이 늘어나 한국의 경제회복이 빨라졌다. 한국은 당분간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이 달라지진 않았나.

“물론이다. 이번 학기에 미국 경제 정책에 대해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따로 가르치는데, 최근 경제위기 때는 교과서로는 가르치지 않은 많은 일이 있었다. 경제위기 이후 경기 사이클의 흐름과 정부의 대응, 그리고 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이유 등은 학생들에게 훌륭한 연구과제다.”

케임브리지(매사추세츠 주)=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는…

193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는 1961년 하버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1967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33년간 하버드대 교수직을 맡고 있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다. 1977∼1982년, 1984∼2008년 전미경제연구소(NBER) 소장을 맡았다. 현재는 NBER의 명예소장이다. 지난해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현 의장과 함께 2005년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뒤를 이을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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