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200만명… 약탈 막으려 軍 1만명 급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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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주민들 은행까지 털어…경찰 최루가스 쏘며 해산작전
軍 “경보발령 안해” 실수 인정…일부 재난지역에 통행금지령
13층서 추락 부녀 기적의 생환…산티아고 국제공항 부분 가동

1960년 이래 최대 지진에 강타 당한 칠레의 피해지역에서는 지진 이틀째를 맞아 물과 식량이 부족한 주민들의 약탈과 무너진 건물에 깔린 생존자에 대한 구조활동이 동시에 벌어졌다. 지진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칠레 제2의 도시 콘셉시온에서는 약탈 군중을 해산하기 위해 경찰이 쏜 최루가스 때문에 구조활동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고 AP통신은 1일 전했다.

○약탈 급증…물대포 동원 군중해산

경찰은 지진으로 황폐화된 콘셉시온을 비롯해 일부 재난지역에서 생필품뿐 아니라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까지 훔쳐가는 일이 벌어지자 물대포와 최루가스를 쏘며 약탈 군중 수백 명을 해산시켰다. 일부 은행, 주유소, 약국도 털렸다. 일부 주민은 콘셉시온 법원 건물 옆에 서 있는 칠레의 독립영웅 베르나르도 오히긴스의 동상 조각을 떼어가기도 했다. 정부는 이재민들의 절박한 상황을 고려해 슈퍼마켓에서 물과 음식을 가져가는 것은 허용하도록 슈퍼마켓 체인과 합의했다. 정부는 가스나 음식 사재기를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약탈이 광범위하게 벌어지자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콘셉시온을 비롯한 재난지역에 군대를 파견하는 포고령에 서명하고 군인 1만 명을 파견했다. 콘셉시온 자체 경찰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칠레 경찰도 칠레 공군이 내준 747 비행기에 지원 경찰을 태워 급파했다. 콘셉시온 인근 치얀 시에서는 교도소 담이 무너져 수감자 200여 명이 탈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칠레 정부는 콘셉시온 시가 속한 비오비오와 마울레 지역에 30일간 오후 9시부터 오전 6시까지 구조대원 이외의 주민에게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콘셉시온과 인근 도시에 주둔한 군대는 1일 통행금지를 어긴 주민 160여 명을 구금했다. 마울레 지역의 공식 사망자 541명 중 300여 명은 이 지역 어촌 콘스티투시온에서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강진과 뒤이은 쓰나미로 바닷가에 자리 잡은 집들이 쓸려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프란시스코 비달 국방장관은 1일 “해군이 쓰나미 경보를 발령하지 않았다”며 군의 실수를 인정했다. 칠레에 체류 중인 스웨덴인 100여 명과 영국인 6명도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진 공포 속 구조활동 이어져

콘셉시온 시에서 무너진 15층 아파트에서는 잔해에 깔린 것으로 추정되는 60여 명에 대한 수색작업이 이뤄졌다. 아파트 13층에 살던 알베르토 로사스 씨와 일곱 살 된 딸 페르난다 양은 기적처럼 생존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들 부녀는 지난달 27일 새벽 아파트가 흔들리자 화장실로 대피했다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추락했다. 하지만 약간 긁히고 베인 것 말고는 큰 부상 없이 맨손으로 건물 잔해 속에서 기어 올라와 목숨을 건졌다. 1일까지 이 아파트에서 23명이 구조됐고 시신 8구가 발견됐다.

그러나 아파트 구조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구조대원이 열탐지기와 전기톱 등으로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어둠이 짙어지면 전기가 끊겨 구호활동을 멈추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불과 수개월 전에 완공된 것으로 주민들은 건설회사가 건축기준을 어겨 이 같은 사고가 터졌다고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일부 주민은 건설회사를 상대로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피해가 큰 마울레와 비오비오 지역을 제외하고는 서서히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고 있다. 수도 산티아고에서는 지하철 1개 노선의 운행이 재개됐고 도로도 상당 부분 통행이 가능해졌다. 산티아고 국제공항도 일부 운항이 재개됐다. 그러나 여진 공포는 계속되고 있다. 1일 새벽에도 여진이 세 차례 발생하는 등 강진 이후 지금까지 규모 4.9∼6.9의 강한 여진이 100여 차례나 계속됐다. 많은 이가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천막이나 임시수용소에서 지내고 있다. 1일 현재 이재민 200만 명이 발생했고 주택과 건물 150만 채가 완전히 파괴되거나 반파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피해 복구에 수년의 시간과 수백억 달러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세계 각국 구호 손길 이어져


이날 라틴아메리카 순방길에 오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2일 예정대로 칠레를 방문하기로 했다. 세계 각국에서 구호 손길도 이어졌다.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프랑스, 대만 등은 칠레에 20만∼400만 달러의 구호자금과 장비, 구조대원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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