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열린 11억 인도시장을 가다]<上>글로벌기업들 치열한 시장 쟁탈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1일 03시 00분


‘제조업 급행열차’ 탄 거대시장… 먼저 올라탄 기업 웃는다

《인도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의 지난해 12월 11일자는 인도 현지에서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인도 시장을 겨냥해 소형차 ‘폴로’를 내놓은 독일 폴크스바겐이 파격적으로 이 신문의 처음부터 마지막 면까지 모든 면에 자동차 광고를 실었다. 인도에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폴크스바겐은 이 광고가 나간 이후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자본 투자 요지로

글로벌기업 공장 잇따라
신흥 공업도시 상전벽해

시장 선점땐 승승장구

LG전자 연평균 45% 성장
현대車“올해 판매 8% 확대”

신규진출은 만만치 않아

정부규제-SOC부족 난관
CEPA 후속 지원정책 시급


미국 식품업체인 하인즈는 “인도는 100km 이동할 때마다 사람들의 입맛이 바뀌는 독특한 시장”이라며 “지난 6, 7년 동안 우리가 인도에서 이룬 것은 (판매를 늘린 것이 아니라) 시장을 이해하는 데 그쳤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2007년 이후 매년 약 2200만 달러(약 248억 원)씩을 인도 시장에 변함없이 쏟아 붓고 있다고 했다.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수년 전 인도에서 철수한 일본 파나소닉도 이달 초 향후 3년간 3억 달러를 투자해 인도에 처음으로 생산 공장을 짓고 TV 시장에 재도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 TV 만드는 인도 근로자인도 노이다의 삼성전자 공장에서 현지 직원이 발광다이오드(LED) TV를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의 작년 인도 TV 생산량은 2007년 대비 54% 증가했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삼성전자 TV 만드는 인도 근로자
인도 노이다의 삼성전자 공장에서 현지 직원이 발광다이오드(LED) TV를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의 작년 인도 TV 생산량은 2007년 대비 54% 증가했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 인도로 몰리는 글로벌 기업들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 시장 진출을 강화하는 것은 인도 경제가 중국과 함께 글로벌 소비시장의 핵심 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인도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주요 선진국과 달리 매년 5∼7%씩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잠시 주춤하던 대(對)인도 외국인직접투자(FDI)도 지난해 1분기(1∼3월) 반등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지난해 8,000 선까지 폭락했던 인도의 ‘센섹스’ 증시는 최근 외국인 투자가들의 주식 매입에 힘입어 금융위기 전 수준인 20,000 선에 다가섰다.

인도 시장 선점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한국 기업들은 인도의 빠른 성장에 편승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LG전자는 2005년 이후 2008년까지 연간 평균 45%의 고속 성장을 하면서 TV, 세탁기, 에어컨, 냉장고 등 부문에서 인도 시장 1위를 수년째 지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한 지난해에도 LG전자 매출은 전년 대비 35%나 증가했다.

인도와 일본의 합작사인 마루티-스즈키에 이어 인도 자동차시장 2위인 현대자동차는 올해 판매량을 전년 대비 7∼8% 정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뭄바이 인근 푸네에서 굴착기를 생산하는 현대중공업도 지난해 400대를 생산해 44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엔 800대 생산, 1억 달러 매출을 달성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 급행열차에 올라타는 ‘느린 코끼리’

인도 뉴델리를 출발해 20km 정도 떨어진 노이다로 가는 길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의 풍경을 압축해 놓은 듯했다. 뉴델리 외곽의 3차선 도로는 군데군데 포장이 벗겨져 있었다. 도로 변의 지저분한 3층 건물엔 작은 간판들이 다닥다닥 달려 있다.

차를 달려 신흥 공업도시 노이다에 들어서자 풍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크고 작은 공장이 가득 눈에 들어왔다. 1980년대 서울 구로공단의 모습과 비슷했다. 노이다 외곽의 신개발 지역인 그레이터노이다로 들어서자 주변 모습은 또 변했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옆에는 인도의 대기업 릴라이언스가 지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 있었다. 그 옆엔 20층짜리 대형 아파트를 짓고 있다. 가구당 120평에 이르는 이 아파트 시세는 우리 돈으로 7억 원을 웃돈다고 한다.

노이다, 구르가온, 가지아바드 등 급성장하는 뉴델리 인근 신흥도시의 성장 동력은 제조업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곳에 세운 공장은 도시의 풍경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았다. 인도 기업들은 이에 발맞춰 부동산, 유통 사업을 벌이며 엄청난 부(富)를 축적하고 있었다. 풍력발전업체 스즐론 등 인도 제조기업들도 세계무대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도 경제는 ‘커다란 코끼리’에 자주 비유돼 왔다. 경제 규모는 크지만 성장 속도가 느린 때문이다. 올해 인도는 이런 추세를 바꿀 변화의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인도 경제에 대해 “올해는 제조업 투자 확대와 기후 변화로 사상 처음 제조업의 생산액이 농업을 넘어서는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느린 코끼리’ 인도 경제가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하는 제조업의 ‘급행열차’에 올라탄 셈이다.

○ 만만치 않은 진입장벽

한국은 1일 발효된 인도와의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으로 동반 성장의 기회를 얻게 됐다. 무역 전문가들은 전자, 반도체, 자동차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은 이미 무(無)관세이거나 관세 철폐 대상에서 빠졌지만, 기계류는 CEPA 발효로 수출 확대 혜택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투자와 인력 교류의 문호를 확대한 점도 소프트웨어에 강한 인도와 하드웨어에 강한 한국이 동반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도 정부의 까다로운 규제, 치열한 시장 경쟁, 부족한 사회간접자본(SOC)은 만만치 않은 진입장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롯데백화점 인도사무소의 김상연 소장은 2007년부터 현지 유통업 진출을 모색해 왔지만 각종 규제로 아직 활로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처음 인도에 왔을 때만 해도 그의 가방에는 3000억 원을 투자해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등이 입주하는 대형 쇼핑몰을 짓겠다는 기획안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3년 동안 김 소장이 맞닥뜨린 것은 높은 규제의 벽. 김 소장은 “인도는 외국 업체의 소매업 진출을 금지하고 있다”며 “독일 메트로가 벵갈루루에서 도매업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창고형 매장은 가족 단위 일반인들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8세 이하의 어린이는 출입을 금지한다’고 규제할 정도”라고 전했다.

인도는 글로벌 기업들이 앞 다퉈 진출하는 유망 시장이지만 한편으로는 낙후한 SOC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올해 10월 열리는 영연방 체육대회 ‘커먼웰스 게임’은 메인스타디움 등 경기장 완공이 늦어져 무산될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대회를 국운 상승의 계기로 삼으려던 인도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이순철 부산외국어대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에 따르면 국내 대부분의 중견, 중소기업은 인도 수출에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시장에 진출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인도 수출과 현지 투자는 일부 대기업이 성공을 거뒀을 뿐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라며 “신규 진출 업체가 인도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이다·구르가온=김용석 기자 nex@donga.com
韓-印 기업인이 본 양국 경제협력

▼“인도경제 질적 성장 느껴져 中과 완전히 다른 기회의 땅”

신문범 LG전자 인도법인장


“인도는 중국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기회의 땅’입니다.”

LG전자 신문범 인도 법인장(부사장·사진)은 6일 뉴델리 인근 노이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한국 기업에 인도는 중국보다 더 유리한 시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정부가 ‘가전은 하이얼’ ‘TV는 하이센스’라는 식으로 자국의 특정업체를 밀어주는 정책을 펴기 때문에 현지 시장에서 이들을 이기기 어렵다”며 “하지만 인도는 이런 정책을 잘 쓰지 않고 소비자들도 외국 제품에 배타적이지 않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신 부사장은 “특정 분야에만 강한 중국 업체는 인도시장에 진출해서도 저가(低價) 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상품을 공급하지는 못한다”며 “현재 전체 인도 교역량에서 한국이 중국에 뒤지고 있지만 앞으로 중국을 앞설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 근무 5년째인 신 부사장은 “최근 빠르게 커지는 인도시장의 질적인 변화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 인도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나라를 떠나려고 했지만, 이제는 미국 등 해외에서 일하다 인도로 돌아오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이는 인도 경제가 질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이어 그는 “교육열이 높은 데다 영국식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 비교적 사회가 안정된 인도는 스리랑카 등 주변 신흥시장 진출의 허브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노이다=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제조업에 강한 한국기업 인도 SW 손잡으면 시너지”

고시 TCS 부회장

“타타그룹은 날씨, 강수량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모바일 농업 정보기기’를 개발해 대당 30달러에 공급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에 강한 인도와 제조업에 강한 한국이 이런 분야에서 손잡으면 혁신적인 성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타타컨설턴시서비스(TCS)의 인도북부지역 사업 총괄인 디바시스 고시 부회장(사진)은 7일 뉴델리 사무실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일 발효된 한국-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설명했다. 직원이 14만 명인 TCS는 세계 42개국에 진출해 기업 대상 IT서비스 사업으로 연간 6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컨설팅회사다. 타타그룹은 철강, 자동차, 통신 등 분야에 90여 개 계열사를 가진 인도 최대의 기업이다.

고시 부회장은 “CEPA 발효를 계기로 인도의 전문 인력들이 한국에 많이 진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며 “국민의 절반이 30세 미만이고, 기술을 빨리 습득하는 능력을 지닌 인도의 젊은 인력이 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도 경제도 8% 이상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이어가려면 제조업의 힘이 강해져야 한다”며 “한국 제조업의 인도 투자가 늘어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도 전체 인구의 70%는 은행 계좌도 없는 빈곤층이어서 당장은 구매력이 약하지만 이들이 빠르게 중산층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이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펼치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조언했다.

뉴델리=김용석 기자 nex@donga.com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

자유무역협정(FTA)과 동일한 성격의 협정이다. 상품에 대한 관세를 없앨 뿐 아니라 서비스 교역, 투자, 경제협력 등 경제관계 전반을 포괄한다. 1월 1일부터 발효된 한-인도 CEPA에 따르면 한국은 수입액 기준 90%, 인도는 85%에 이르는 상품의 관세를 즉시 또는 최장 10년 동안 점차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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