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12’ 중국인들 유난히 많이 보는 이유 있었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3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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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종말론을 배경으로 한 영화 ‘2012’의 스틸컷. 대지진으로 무너지는 미국 LA 도심. 출처·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2012년 종말론을 배경으로 한 영화 ‘2012’의 스틸컷. 대지진으로 무너지는 미국 LA 도심. 출처·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미국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 '2012'가 중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13일 개봉 이후 영화 수입이 1720만 달러에 이른다. 베이징(北京) 대부분의 영화관은 상영관 중 60~70%를 2012 상영에 할애하고 있으나 주말에는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중국 신문과 방송도 연일 이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베이징칭녠(北京靑年)보는 영화의 줄거리와 달리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히 설명한 내용을 소개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자매지 환추(環球)시보는 이 영화 상영을 계기로 환경 재앙이나 외부 천체 충돌 등으로 지구의 종말 오는 지 등을 다루고 있다.

중국에서 이 영화가 이처럼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이 영화가 중국인들의 자부심을 높일 만한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인도의 젊은 과학자가 고대 마야인들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로 끝나는 것처럼 실제로 이날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한다. 태양의 이상 폭발로 전달된 중성미자의 영향으로 지구 내부의 온도가 올라가 거대한 화산과 쓰나미가 발생하고, 지구의 남북극이 바뀌며 각 대륙이 마치 물 위의 뗏목처럼 떠다니게 되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이에 대해 미국 등 주요 8개국(G8) 정상들은 비밀리에 회동하며 중국 쓰촨(四川) 성의 한 오지에서 종말 이후에도 지구에 남을 인류 4만 명과 동물을 실을 방주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그날이 왔을 때 세계 각국 정상과 '10억 유로'를 내고 탑승권을 구입한 사람들이 중국으로 올 때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가 '중화인민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영어로 말한다. 이 대사가 나올 때 영화관의 중국 관객들은 마치 중국이 세계를 구하는 임무를 맡은 것처럼 자부심을 느낀다.

또 1만 명 이상이 탑승하는 거대한 방주를 보고 미국 장교가 "중국을 방주 건조 지역으로 선택한 것은 훌륭했다. 오직 중국만이 이렇게 빨리 이런 규모의 방주를 건조할 수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잭슨 커티스(존 쿠삭)는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노아의 방주'격인 도피선이 있는 중국으로 간다.
잭슨 커티스(존 쿠삭)는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노아의 방주'격인 도피선이 있는 중국으로 간다.

이어 '그날 그 순간'이 다가오면서 방주 건조에 동원된 인부 등 상당수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방주 출항을 늦추는 위험을 무릅쓰고 태워야 하는 지가 초미의 과제로 등장한다. 출항 시간을 늦추다 중국 대륙 깊숙이 밀어닥친 쓰나미를 맞는 경우 인류는 종말을 고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방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태워야 한다고 첫 주장을 한 사람은 미국의 과학자였지만 국가 대표로서 이에 처음 동의한 사람은 중국 대표였다. 인류 최후의 순간을 맞을 수도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휴머니티'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위에 중국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일부의 영화 평처럼 2012는 거대하고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이 압권인 반면 구성이나 줄거리 전개는 그다지 치밀하지 못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영화의 작품성을 떠나 중국에서는 "언제 헐리우드에서 만든 영화가 이처럼 중국을 중시하고 높이 평가한 적이 있느냐"며 열광하고 있다. 중국의 부패와 인권, 빈민, 티베트 독립 등에 관한 영화들이 중국의 지도층은 물론 일반인들의 심기를 거스르던 것과는 정반대다.
거대한 쓰나미로 에베레스트 산맥이 바다에 잠긴다.
거대한 쓰나미로 에베레스트 산맥이 바다에 잠긴다.

베이징의 한 시민은 "버락 오바바의 중국 방문과 영화 2012는 중국이 세계에서 주목받는 국가가 됐음을 새삼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13억 중국 시장을 의식해서 만든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중국에서 한 해 상영할 수 있는 미국 영화는 20편으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미국학연구소의 선딩리(沈丁立) 교수는 "이제 중국인을 가난하고, 때로는 적으로 그려서는 중국에서는 돈이 안된다는 것을 헐리우드가 깨달았다"고 분석했다.

다만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환경재앙을 다룬 영화 '투모로우' '인디펜던스 데이' 그리고 '고질라' 등을 만든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중국 시장을 의식해서 중국을 주요 무대로 했는 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베이징=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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