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빠진 美, 160cm 여경의 용기에 위로받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軍기지 총기난사

‘그녀의 용기는 모든 미국인에게 자부심을 안겨줬다.’(8일·미 일간지 보스턴글로브)

두 딸의 엄마인 30대 여성 경찰이 5일(현지 시간) 군인 13명이 숨져 ‘미군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라 불리는 포트후드 기지 참사사건의 범인을 거의 혼자서 진압한 사실이 알려지며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7일자 A2면 참조

주인공은 포트후드 기지에 있는 민간 경찰서 특별기동대(SWAT) 소속인 킴벌리 먼리 경사(34). 그는 사건현장에서 총격전을 벌이며 총기난사범인 니달 말리크 하산 육군 소령(39)을 검거했다. 범인이 쏜 총이 정강이와 허벅지에 두 발이나 맞았으나 끝까지 총을 쏘며 범인을 제압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먼리 경사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엔 변변한 지원 병력도 없었다. 차량정비소로 가던 길에 경찰 무선을 통해 사건을 접한 그는 현장에 출동하자마자 권총을 든 하산 소령이 한 부상병을 쫓고 있는 광경과 맞닥뜨렸다. 먼리 경사는 지체할 틈 없이 권총을 빼어들고 차와 빌딩을 방패삼아 범인과 일대일 총격전을 벌였다. 먼리 경사도 총에 맞았지만 가슴 등에 네 발을 맞은 범인이 먼저 쓰러졌다. 이후 총격전 도중 도착한 지원 병력과 함께 하산 소령을 붙잡았다.

160cm가 채 안되는 키에 가냘픈 체격인 먼리 경사는 고향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경찰에 몸담았을 때부터 여걸로 유명했다. CNN 등에 따르면 11세에 사냥을 배워 총에 능숙해 사격교관을 지냈다. 남성 동료를 폭행한 거구의 괴한을 혼자 쓰러뜨려 ‘슈퍼 여경’이란 별명도 있다. 이후 군에 투신해 복무하던 중 특수부대 요원인 현 남편을 만났고 지난해 경찰에 복귀했다. 최근 남편이 노스캐롤라이나 포트브래그로 전근 명령을 받아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슬하엔 15세와 2세인 딸이 있다.

미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먼리 경사가 성공적으로 범인을 제압한 배경엔 ‘버지니아공대 사건 매뉴얼’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7일 전했다. 2007년 이민자 조승희가 총기를 난사해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은 당시 경찰이 지원 병력을 기다려야 하는 수칙(protocol)에 얽매여 범인을 제압할 기회를 놓쳤다. 이후 범인이 총을 든 상황에선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대응하도록 수칙이 바뀌었다. 먼리 경사의 동료인 척 메들리 응급팀장은 “수칙이 고쳐졌다 해도 용기와 기술 없인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먼리 경사가 완벽하게 경찰수칙을 따른 것만도 아니었다. 보스턴글로브에 따르면 미국 군대와 경찰 지침엔 전투 상황에서 여성은 최일선에 나서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 보스턴글로브는 “총명한 그가 어리석은 지침을 깨뜨림으로써 얼마나 많은 인명을 구했는지 보라”고 찬사를 보냈다.

먼리 경사는 범인을 제압한 뒤 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의식을 찾은 뒤 “군인들이 얼마나 다쳤느냐”고 물은 뒤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에게는 자신이 ‘괜찮다’는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나머지 총알 파편을 제거하는 재수술을 앞둔 먼리 경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몇 사람의 인생을 살렸을 수도 있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고 올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