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주역 3인 한자리에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2일 03시 00분


고르비-콜 ‘20년 앙금’ 풀다

고르비 “처음엔 독일통일 반대 입장… 콜총리에 미안”
콜 “고르비는 핵심 파트너… 기분나쁠땐 부시에 전화”
부시 “역사는 탄압받던 사람들 가슴속에서 이뤄진것”


20년 전 베를린 장벽 붕괴를 이끌었던 주역 3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79),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85),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78)은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일을 약 일주일 앞둔 지난달 31일 베를린에서 만나 당시 상황을 회고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가졌다.

‘통일 재상(宰相)’ 콜 전 총리는 이날 미클로시 네메트 전 헝가리 총리,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 전 폴란드 총리 등 1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옛 베를린 장벽 터 바로 동쪽에 위치한 프리드리히슈타트팔라스트 극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부시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독일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였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2월 허리 수술 이후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고 뇌중풍(뇌졸중)으로 인한 안면마비로 발음도 어눌해진 콜 전 총리는 “병 때문에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며 “당신들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부시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면 금방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해 청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역시 2년 전 허리 수술 이후 어렵게 비행기 여행을 한 부시 전 대통령은 “든든한 바위와 같은 콜 전 총리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칭찬한 뒤 “그러나 우리가 기념하기 위해 만난 이 역사적 사건은 본이나 모스크바, 워싱턴이 아니라 오랫동안 천부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1996년 작고한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을 거론한 뒤 “대처, 미테랑 그리고 나는 당시 두 개의 독일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이에 대해 콜 총리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콜 총리와는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며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프랑스는 영국이 독일 통일에 적대적이었고 프랑스도 독일 통일을 불안하게 여겼다는 내용의 외교 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9일에는 ‘자유의 페스티벌’이란 행사가 열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 자리에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등을 초청했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대신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