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구 소년 실종… 인종차별 고문 폭로… 모두 사기극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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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거짓말에 눈멀다

21세기 미국의
신(新)양치기 소년들. TV 출연을 위해 가족 모두 작당한 ‘풍선 소년’ 힌 씨 가족(왼쪽)과 남자 친구에게 복수한다며 거짓말로
6명을 감옥에 보낸 메건 윌리엄스 씨(가운데), 그리고 사회적 동정에 맛 들여 전쟁영웅인 척 행동한 데이비드 버드워
상사(오른쪽). 모두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 출처 텔레그래프·유에스에이투데이·폭스뉴스 홈페이지
21세기 미국의 신(新)양치기 소년들. TV 출연을 위해 가족 모두 작당한 ‘풍선 소년’ 힌 씨 가족(왼쪽)과 남자 친구에게 복수한다며 거짓말로 6명을 감옥에 보낸 메건 윌리엄스 씨(가운데), 그리고 사회적 동정에 맛 들여 전쟁영웅인 척 행동한 데이비드 버드워 상사(오른쪽). 모두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 출처 텔레그래프·유에스에이투데이·폭스뉴스 홈페이지

TV 리얼리티 쇼가 도덕불감증 부추겨
평범한 사람들까지 거짓말 행렬에 가세


해맑은 눈빛의 어린 꼬마, 인종차별 피해자라고 말하는 흑인 여성, 전쟁에서 다쳤다고 동정을 구하는 상이용사….

미국 사회에서 기존 가치관으로 보면 진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평범한 사람의 말들이 거짓말로 들통 나고 있다. 더구나 TV쇼 출연이나 콘서트 티켓 같은 ‘시답지 않은 이유’로 사기극을 벌여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내에서조차 ‘Hoax(날조)’와 ‘Ville(타운이나 시티)’을 합쳐 ‘날조 공화국(Hoaxville USA)’이라는 조어까지 나올 정도다.

○ 누구도 진실하지 않다

15일 미국은 물론 세계를 들쑤셨던 가짜 ‘열기구 소년 사건’은 팰컨 힌 군의 가족이 TV 출연을 목적으로 꾸민 일로 드러났다.

▶본보 17일자 A15면 참조

TV 리얼리티 쇼 ‘아내 바꾸기’에 출연한 경력이 있던 팰컨 군의 부모는 아이들과 예행연습까지 했다. 짐 올더던 지역 보안관은 “공모 및 청소년 이용 범죄 등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라며 “최대 징역 6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민감한 흑백갈등에 대한 토로도 허위로 드러났다. 2007년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사건 피해자인 흑인 메건 윌리엄스 씨가 주인공. 당시 20세였던 그녀는 남자친구를 포함한 백인 남녀 7명이 자신을 납치해 고문했다고 폭로했다. 온몸이 멍과 면도날 자국으로 뒤덮였으며 쥐와 사람 배설물까지 먹어야 했다고 울부짖던 모습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가해자로 지목된 7명 가운데 6명이 유죄를 받았다.

하지만 23일 윌리엄스 씨가 진술을 180도 뒤집으며 미국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남자친구에게 한 대 맞은 게 분해 거짓말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윌리엄스 씨의 어머니(사망)는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큰돈을 벌 수 있다”며 딸을 꼬드겼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직업인 해병대원까지 날조 시리즈에 동참했다. 버지니아 주 콴티코 해병대기지에 복무하는 데이비드 버드워 상사(34)가 사기죄 등으로 붙잡혔다고 AP통신 등이 21일 전했다. 버드워 상사는 이라크전쟁으로 불구가 된 전쟁 영웅인 척하면서 2년 동안 온갖 ‘사회적 편의’를 제공받은 혐의다. 그가 받은 편의란 대체로 쓴웃음이 나오는 내용이다. 록 콘서트나 메이저리그 상이군인 우대티켓을 구하거나 연금매장에서 가전제품을 좀 더 할인받았다. 군복에 달았던 표장이나 훈장도 손수 만들어 붙였다. 그러나 버드워 상사는 아프가니스탄에 잠깐 파병되었던 적은 있으나 후방에 있었고, 일본 오키나와에서 통신병으로 복무 기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다친 적도 물론 없다.

○ TV가 부추긴 도덕불감증

평범한 사람들이 엄청난 거짓말로 사회를 뒤흔들자 미국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은 16일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외치던 미국이 혹스(Hoax) 아메리카나로 전락했다”고 탄식했다.

잦은 거짓말이 이어지자 진실도 의심받는 풍조가 만연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미 지역신문 ‘샌프란시스코 비즈니스타임스’는 최근 사회에 퍼지고 있는 ‘신종 플루 조작설’을 소개했다. 이 신문은 “최근 신종 플루가 정부나 기업의 음모라는 음모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면서 “숱한 거짓말에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월간지 네이션은 이를 ‘날조공화국 신드롬’이라 부르며 “TV 리얼리티 쇼가 범람하며 거짓말이라도 대중의 관심만 끌면 된다는 도덕불감증이 일반인에게도 확산됐다”고 지적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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