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수주의 지도자 부재… 뇌사상태”

  • 입력 2009년 10월 10일 02시 58분


■ ‘종말론’의 5가지 근거

지배담론 실종-대안없는 반대… ‘말장난’만 생산
오바마 정권에 무기력 대응… 언론마저 등돌려

8년 만의 민주당 정부 탄생을 계기로 미국 내에서는 보수주의의 생명력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전까지 미국은 거대한 ‘우파의 제국(right nation)’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8년 재임기간을 정점으로 만개한 미국 보수주의는 미국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주류담론이었다.

낙태를 반대하고 동성애를 부정하는 기독교 보수주의는 여전히 미국의 ‘평균정서’라는 공감대가 있는데도 최근 미국에서는 보수주의에 대한 사망선고를 내리기도 한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최소한 미국의 보수주의는 사실상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① 거장(巨匠)이 없다

보수주의가 방황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보수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보수진영을 아우를 지배담론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정신적, 실질적 리더의 존재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 지난 대선에서 참패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정치적 생명이 다했고 매케인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지도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보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 팀 폴렌티 미네소타 주지사 등이 차세대 지도자군으로 거론되지만 중량감은 떨어진다.

② ‘토킹 포인트’만 생산하는 경박한 말장난

보수주의가 1960년대부터 30년 이상 미국인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보수주의자의 말들이 내놓는 논리의 엄격성 덕분이다. 엘리트의 지성에 호소하면서 대중의 행동을 이끌어 냄으로써 보통 미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생활 속의 보수주의자가 됐다. 하지만 현재 보수주의 운동을 주도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듣는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경박한 ‘토킹 포인트’만을 생산해 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어빙 크리스틀, 윌리엄 버클리 같은 논객이 나오지 않은 채 글렌 벡, 러시 림보와 같은 자극적인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가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주 원인으로 지적된다.

③ 대안(代案) 없는 반대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보수주의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당분간은 어려워 보인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건강보험개혁, 이민법개혁, 핵 없는 세상 구현,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협약 타결을 위한 협상의 강화에 이르기까지 오바마 대통령의 이니셔티브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지만 대안이 뭐냐고 물으면 답을 내놓지 못한다.

④적전분열로 지리멸렬

구심점이 없고 대중의 지지 이탈을 겪다 보니 책임 소재를 두고 자중지란의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매케인 후보캠프에서 선거총책을 맡았던 스티브 슈미트 씨는 그의 부통령 후보였던 페일린 주지사를 두고 “그가 차기 대선에서 대권주자가 된다면 공화당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혹평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 씨는 보수적 토크쇼 진행자들을 싸잡아서 “이들이 일시적으로 힘이 있어 보이지만 그 파워는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⑤ 언론도 보수주의의 적?

언론도 보수주의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푸념도 많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일간지는 물론이고 ABC, CBS, NBC 등 3대 지상파를 장악한 것은 리버럴이며 보수주의를 고리타분한 과거의 생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 스티븐 헤이워드 미국기업연구소(AEI) 석좌연구원은 “보수주의의 부활 여부는 리버럴에 대한 공격이 아닌 보수본연의 가치 회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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