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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9월 17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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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수교 30주년을 맞은 미중 관계는 1980년대에 무역수지와 기술이전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1990년대에는 대만 및 인권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전략 및 군축문제로까지 양국 간 현안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중국의 ‘부상’과 맞물리면서 미중 관계의 전개방향이 곧 21세기 국제정치의 좌표를 결정하는 것으로까지 평가된다.
21세기 들어 미중 관계가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에 주로 양자적 현안에 매몰됐던 데서 벗어나 미얀마 북한 이란 수단 등의 지역문제에 대한 협력 제고와 함께 기후변화 및 에너지와 같은 전 지구적 이슈에까지 양국 관계의 관심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전면적 다기능 의제’의 등장 이외에도 ‘상호간 위협(彼此威脅)’에 대한 개별적 대응으로부터 ‘공통의 위협(共同威脅)’에 대한 대처로 미중 관계의 관심이 일정 부분 바뀌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양국 협력속 경쟁수준 높아져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향후 미중 관계의 전개 방향을 속단하기 어려운 다양한 배경이 존재한다. 양국 간에 ‘전략경제대화(SED)’를 개최하는 등 전에 없이 협력의 강도를 높이는 중에도 소위 G2의 담론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로부터 얻은 좌절이 파생시킨 미국의 고육지책일 뿐이며 중국위협론의 또 다른 변종(變種)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중국에서는 쉬이 접할 수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교류와 접촉(engagement)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국제사회와의 통합(integration)으로의 유도까지 상정하지만 한(漢) 당(唐) 명청(明淸)을 통해 제국 경영의 경륜을 지닌 중국은 자신만의 공간 확보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미국과 중국의 종합국력이 교점을 이루는 시기가 일러야 2050년 정도로 추정되다 최근에는 2035년으로까지 앞당겨지는 추세에 있다. 전 지구적 경제위기의 와중에서도 중국의 회복세는 유난히 빨라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예상외로 미국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 수 있다. ‘절대로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不稱覇不當頭)’며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천명하는 중국이 시간은 결국 자신의 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중 관계의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한 세계학계의 주류적 관점은 대략 두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중국의 ‘부상’이 현 체제에 대한 불안 요인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세력전이를 둘러싼 전쟁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며, 다른 하나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앞으로 더 첨예해질 수밖에 없지만 양자의 공통이익이 늘면서 분쟁의 현명한 관리를 학습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양국 간에 전략적 협력은 강화되면서도 ‘묵시적 경쟁’의 수준은 높아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미중 간 상호의존은 급속히 심화되면서도 1999년 미 전폭기의 유고 주재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 2001년의 EP-3 정찰기 사건 및 올 3월 남중국해에서 일어난 임페커블호 사건 등의 발생은 이 같은 추세를 잘 반영한다.
문제는 미중 관계에 대한 이러한 전망이 한국의 외교전략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이다. 우선 미시적으로 미국 중국과 공히 긴밀한 정보공유를 위한 경로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중일 3자대화가 곧 출범하고 미중 간에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민간차원의 논의가 이미 시작됐음을 감안할 때 한국의 입장과 이익(북핵 문제를 넘어서는)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반영할지에 대한 빈틈없는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도 치밀한 민관합동(1.5트랙)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하며 한미일, 한중일 그리고 한미중을 잇는 ‘소(小)다자연계’도 함께 활성화해야 한다.
민관합동 ‘한국의 좌표’ 찾아야
또 거시적으로는 2030년대까지 기간별로 미중 관계의 변환 추세에 따라 생길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꼼꼼히 상정하고 그에 걸맞은 한국의 대외전략 및 대미 그리고 대중 관계에 대한 구상작업을 당장 시작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제까지 경제와 외교로 지탱한 한국에 미중 관계에서 제대로 된 좌표를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의 현안에 매몰되기 쉬운 우리 외교당국이 미중 관계를 그저 쳐다보기만 하는 ‘관중’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할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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