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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14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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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미국 백악관 이스트룸. 연단에 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지금 이 순간은 이 집(백악관)에 사는 사람에게 부여된 수많은 영예와 특권 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레이드마크 격인 ‘건강한 팔뚝’을 드러낸 빨간 민소매 원피스를 차려입은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단하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미셸 여사도 남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큰 박수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렇듯 큰 의미를 부여한 자리는 ‘자유의 메달’ 수여 행사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민간인 자격으로 군에 봉사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처음으로 만들었다가 1963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부활시킨 자유의 메달은 미국 내에서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로 꼽힌다. 인문, 사회, 예술, 스포츠, 의학, 정치 등 시민사회의 전 영역을 망라하며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16명의 수상자를 차례로 소개하며 자신의 선거 슬로건이었던 ‘위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한 주역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오늘 상을 받게 된 사람들은 영광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아니라 신념에 따라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살맛나게 만든 진정한 영웅들”이라고 강조했다. 수상자 중에는 1963년 영화 ‘들백합’으로 흑인 최초의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던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 시드니 포이티어 씨가 눈에 띄었다. 포이티어 씨는 이후 ‘흑과 백’ ‘초대받지 않은 손님’ ‘언제나 마음은 태양’ 등에 출연하며 인종차별과 관련한 사회적 메시지를 꾸준히 던져 왔다. 바하마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내 삶을 지탱해 준 힘은 스스로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채찍질이었다”며 “미국 문화에는 아직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남아 있다. 인종 간 상호 존중과 관련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소감을 밝혔다.
미국 여성 최초의 대법관에 올랐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판사도 이날 영광의 수상자에 뽑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코너 전 대법관이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3년이 아닌 2년 만에 우등 졸업한 뒤에도 정식 법률가가 아닌 타자를 치는 행정직원 자리를 제안받았던 것이 유일한 취업 기회였다는 점을 상기시킨 뒤 “오코너 전 대법관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고 가장 권위 있는 대법관이 됐고 여성들이 따를 수 있는 역할모델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 방글라데시의 빈민운동가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무함마드 유누스 씨, 동성애자로 미국 최초로 시의원에 선출됐던 하비 밀크 씨, 현존하는 유일한 크로족의 인디언 전사 출신인 작가 조 메디신 크로 씨, 잭 켐프 전 미 하원의원, 장애를 딛고 일어선 영국의 천재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전설적인 테니스 스타 빌리 진 킹 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에드워드 케네디 미 상원의원,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등이 상을 받았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