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돋보이게”… 뒤로 숨은 클린턴 국무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힐러리는 어디 있는거야?"

16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로즈가든.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가든 모퉁이 건물 기둥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오찬이나 다른 행사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클린턴 장관은 항상 오바마 대통령의 참모나 경호원들 틈에 섞여 뒤에나 옆에 있었다. 기념촬영을 할 때도 그저 여러 명 중 한명이었다. 그러면서도 클린턴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하면 어김없이 수첩을 꺼내 열심히 받아 적었다.

이번 정상회담 기간 중 이 대통령을 근접 수행한 한국정부 고위관계자는 "클린턴 장관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으로서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올 2월 방한해 청와대를 예방했을 때 클린턴 장관에게서 세계적 정치인다운 카리스마와 화려함이 자연스레 발산됐었던 것과 대비해보면 스스로 처신을 얼마나 조심하는 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대통령과 함께 있거나 대통령이 화제로 거론될 때 몸을 낮추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클린턴 장관의 로우 키 행보는 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호평의 대상이다.

미국에선 고위관리나 정치인들이 수시로 일요일 아침 방송 대담 프로에 출연하지만 클린턴 장관은 이달 7일에서야 취임 후 처음으로 방송 대담 프로에 나왔다. 거기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나와 개인적으로 있을 때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팀과 함께 있을 때, 강인하고 사려깊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 준다"며 "그는 탁월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영광"이라고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외교전문가인 제니퍼 라즐로 미즈라히 씨는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역대 국무장관 중에서 클린턴만큼 앞에 나서지 않았던 장관도 드물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대선 직후 오바마 당선자가 대선 라이벌이었던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지명했을 때 워싱턴에선 "개성강한 세계적 스타를 국무장관에 임명하면 외교안보팀에서 '별들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었다. 하지만 요즘 백악관에선 "라이벌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호감과 존경이 우러나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로우키 행보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장관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최근 미 언론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어느 누구보다도 클린턴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최종적인 의사결정에서 클린턴의 말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클린턴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클린턴 장관은 17일 오후 백악관으로 가던 중 넘어져 오른쪽 팔꿈치에 골절상을 입었으며 다음주중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국무부가 밝혔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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