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손금보듯 월가 감독한다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오바마 금융개혁안 발표… “대공황 후 최대 개편”

재무부-FRB 권한 강화… 파생상품 새 규제 도입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감독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미국 금융규제 개혁안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가 6개월간의 준비작업으로 마련한 이번 개혁안은 ‘1930년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 감독 시스템 개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개혁안의 요지는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을 수 있도록 정부의 감독권을 강화하고 헤지펀드 파생상품 등 그동안 금융 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분야에 과감한 규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이 과도해질 것”이라며 반대하는 시각도 있어 향후 의회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금융시장을 정부 감독의 틀 안에 묶다

미국 정부는 우선 재무부 산하에 ‘금융당국위원회’(가칭)를 설치해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재무장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재무부는 파산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의 구제를 승인할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감독권한도 대폭 강화된다. 은행뿐 아니라 보험사 증권사 같은 비은행 대형 금융기관들에 대한 감독권을 부여하고 이들 금융회사에 대해서도 일정 금액의 준비금 유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금융위기에서 보듯 대형 금융회사들은 복잡한 거래관계로 연결돼 있어 한 회사가 위험해지면 금융시장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으므로 위험 고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금융감독 사각지대도 없애기로 했다. 일정 규모 이상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등은 증권거래위원회(SEC) 등록을 의무화하기로 했으며 AIG를 파산 위기로 몰고 갔던 신용디폴트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에 대해 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새로운 규제방안도 마련된다.

이와 함께 지방의 소규모 은행들을 감독하는 재무부 산하 지방저축기관 감독기관인 연방저축기관감독청(OTS)을 연방금융감독기관인 연방통화감독청(OCC)과 통합해 새로운 감독기구인 ‘전국은행감독청(National Bank Supervisor)’을 신설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또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칭 ‘소비자금융보호국(CFPA)’ 설립도 제안했다. 새로운 소비자 보호기구는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와 신용카드, 여타 금융상품에 대한 감독을 담당하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문제가 있는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는 소비자금융보호국이 직접 조사를 벌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을 제안했다.

공화 “정부 개입 지나치다”

금융규제 개혁안의 상당 부분은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내용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안에 의회통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벌써부터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 논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 원내대표는 “일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금융산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과도해져 시장의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젭 헨스얼링 하원의원도 “잘못된 진단이 잘못된 처방을 내렸다”면서 “오바마 정부는 규제 완화에 모든 책임을 돌렸지만 문제는 규제 완화가 아니라 ‘멍청한’ 규제였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마크 워너 상원의원은 “코끼리(정부)가 춤추면 풀밭(시장)이 망가진다. 이미 풀밭이 망가진 상황에서 더 큰 코끼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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