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 달러가치 올 최저… ‘팍스 달러리엄’ 저물어가나

  • 입력 2009년 5월 22일 02시 56분


글로벌 경기회복 기대감에 미국경제 비관론 겹쳐 달러 선호심리 급속냉각
외환시장 불안 재현땐 다시 강세로 돌아설수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한동안 강세를 보이던 달러화가 최근 뚜렷한 약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런 흐름을 두고 ‘팍스 달러리엄(Pax Dollarium·미국 달러화가 지배하는 세계 경제질서)’의 시대가 저무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시각과 미국 등 선진국이 용인하는 수준, 즉 ‘관리된 약(弱)달러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유럽연합(EU) 일본 영국 등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1일(한국 시간) 현재 80.909로 올해 들어 최저치로 떨어졌다. 한 달 사이 달러화 가치가 7%나 폭락한 것. 유로화에 대한 달러화 환율은 1.3774달러로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파운드화에 대한 달러화 환율은 1.5746달러로 6개월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원자재값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62달러로 치솟으며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고 금값도 8주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달러화 가치의 급락은 기본적으로 세계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이날 미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 금융시스템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는 중요한 징후들이 감지되고 있다”면서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최근의 달러화 약세는 안전자산 선호 현상 때문에 일시적으로 왜곡됐던 달러화 가치가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1년 7월 121.21에 이르렀던 달러인덱스는 그해 하반기부터 꾸준히 하락해 2008년 4월에는 71.34까지 떨어졌다. 6년 반 동안 달러화 가치가 41%나 폭락한 것. 하지만 미국발(發) 금융위기는 역설적으로 달러화 가치를 끌어올렸고 달러인덱스는 3월 10일 89.1까지 회복됐다.

미국 실물경제에 대한 회의적인 신호도 많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이날 공개한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미국은 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월 제시한 예상치 ―1.3∼―0.5%보다 낮은 ―2.0∼―1.3%로 하향 조정하고 실업률 또한 연초 전망했던 8.5∼8.8%에서 9.2∼9.6%로 올렸다.

국제적으로도 달러화에 대한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공개적으로 달러화에 대응한 기축통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브라질은 20일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 무역결제 때 달러화 대신 양국 통화를 사용하기로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앞서 러시아와도 양국 통화로 결제하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글로벌 달러화 약세 흐름 속에서 원-달러 환율의 방향성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외환 당국이 어느 정도 선에서 달러화 매입 개입에 나설 것인가를 관건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인도 중앙은행은 루피화 급등으로 달러 매수 개입에 나섰고 대만 태국 등도 매수 개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최근 공매도 제한을 풀기로 한 것도 주가가 일정 부분 떨어지더라도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상승하는 것을 막겠다는 당국의 의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진우 NH선물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달러가 약세 흐름으로 바뀌었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 불안 요인이 나오면 언제든지 다시 강세로 돌아설 수 있다”며 “현재 글로벌 외환시장은 달러화의 추이를 놓고 폭풍전야 같은 불안감이 감도는 상태”라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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