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말 말 말’ 신세대 손끝서 나온다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대통령 머리 만져봐도 돼요?”8일 백악관을 방문한 직원 아들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머리를 만지고 싶다”고 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허리를 숙여 만지게 해주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대통령 머리 만져봐도 돼요?”
8일 백악관을 방문한 직원 아들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머리를 만지고 싶다”고 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허리를 숙여 만지게 해주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31세 벤 로즈, 국내외 그림자 수행
이슬람 화해 등 名연설 문구 만들어

“오바마가 외교정책 연설에서 가장 싫어하는 표현들은 멀건 죽처럼 맥 빠진 언어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이슬람과의 화해, 유럽과 중남미에서의 새로운 리더십 등 세계를 상대로 주요한 메시지를 발표해 왔다. 훗날 역사가들이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대(大)선회를 약속한 발언들로 기록할 그 연설들은 뜻밖에 31세 스피치라이터(speech writer) 손에서 나왔다.

정치뉴스 전문 사이트 폴리티코는 18일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안보 연설문 담당인 벤 로즈 씨(사진)를 소개했다. 공식직함이 연설문 담당 부책임자인 그가 전하는 외교안보 담당 스피치라이터의 삶은 대통령 전용기와 수행원용 밴 안에서 무릎에 노트북컴퓨터를 올려놓고 막바지까지 표현을 다듬으며 머리를 쥐어짜는 생활이다.

지난달 5일 오전 오바마 대통령은 체코 프라하에서 2만여 청중을 상대로 ‘지구촌 비핵화 비전’을 밝혔다. 세계 주요 언론 대부분이 헤드라인으로 처리한 이 연설은 로즈 씨가 한 달 넘게 준비해온 작품이었다. 그런데 연설 몇 시간 전인 이날 새벽(체코 시간 기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새벽잠을 깬 오바마 대통령 지시로 로즈 씨는 이미 퇴고(推敲)한 프라하 연설문을 긴급 수정해야 했다.

“북한의 도발은 행동의 필요성,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결의의 필요성을 강조해준다. 규칙은 반드시 구속력이 있어야 하며, 위반은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반응은 이렇게 부랴부랴 프라하 연설문에 삽입됐다. 이처럼 로즈 씨는 6명의 스피치라이터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 출장 때 반드시 따라다녀야 한다. 공식직함이 연설문 담당 부책임자이지만 정책참모 직함도 갖고 있다.

주요 연설 일정이 잡히면 대통령은 데이비드 액설로드 고문, 데니스 맥도넛 국가안보부보좌관,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을 불러 30분가량 토론을 벌여 메시지를 정해준다. 이를 토대로 로즈 씨가 작성한 연설문은 최소한 서너 차례 ‘퇴짜’를 맞기 일쑤다. 대통령은 “아주 잘 썼는데, 하지만…”이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에 드는 표현을 찾아낸다고 한다.

로즈 씨는 2002년 뉴욕대에서 소설창작론 석사학위를 딴 직후 리 해밀턴 우드로윌슨국제센터 총재의 연설 담당 보좌역으로 채용됐다. 이어 그는 2007년 오바마 후보 캠프 스피치라이터 그룹좌장인 존 파브르 씨(27)가 이끄는 팀에 합류했다.

스타벅스에 앉아 연설문을 쓰고, 아침마다 비디오 게임에 몰두하는 신세대지만 백악관 입성 후엔 국가안보 관련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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