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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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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관계 해빙무드 타고
“성묘 허용하자” 동정론 부상
“아직도 수배중인 탈영 장교”
정치권 반대… 실현 미지수
30년 전 대만의 육군 장교(대위)로 근무하다 중국으로 귀순한 린이푸(林毅夫·57·사진) 세계은행 부총재의 고향 방문 허용 여부를 놓고 대만에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5월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 취임 이후 중국과 대만 간에 대(大) 3통(通)이 실현되는 등 양안관계 발전은 급물살을 타고 있으나 린 부총재의 대만행은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 린 부총재는 아직 ‘수배 중’
대만 롄허(聯合)보는 6일 “대만 국방부 내에서 ‘린이푸 안(案)’을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며 곧 국방부가 사법부와 법무부 등 당국과 협의에 나설 것”이라며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 입법원의 외교국방위원회에 출석한 국방부 린위바오(林于豹) 사무차장은 “법적으로 린 부총재는 ‘적에 투항한 죄(投敵罪)’로 수배 중인 인물이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고) 대만 방문을 허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린 사무차장은 “법과 현실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다른 기관 관계자들을 모아 공동연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자오민(陳肇敏) 국방부장도 “린이푸 안은 법률과 정치가 얽힌 매우 복잡한 문제”라며 “군법으로만 보면 그에 대한 수배령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국방부 내부 토론은 물론이고 각계의 의견을 물어 처리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움직임은 여당 내에서도 만만치 않다. 국민당의 린위팡(林郁方) 의원은 “양안 관계 개선으로 적의 세력은 강해지고 우리 전력은 약해지는 상황(敵盛我弱)에서 군인의 도주죄는 쉽게 양해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유망 장교에서 귀순자, 이어 세계은행 부총재까지’
베이징(北京)대 교수를 맡다 지난해 2월 개발도상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은행 부총재에 임명된 린 부총재는 대륙과의 최전방인 진먼(金門) 섬에서 장교로 근무하다 1979년 5월 16일 인민해방군에 귀순했다. 진먼방위사령부의 마산(馬山) 지역 담당 연대장이던 그는 농구공 2개를 끼고 2km를 헤엄쳐 ‘적군’에 투항했다.
린 부총재는 처음에는 대만대에 입학했으나 ‘국토방위’를 위해 육군군관학교로 옮겨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사라지자 대만 당국은 부인 등 가족에게 ‘실종 위로금’으로 47만5000대만달러(약 2억 원)를 지급했다.
본명이 린정이(林正誼)였던 그는 귀순 후 이름을 바꾸었다. 그는 베이징대 교수로 중국에서 대표적인 ‘시장경제 및 개혁성향의 경제학자’로 부상했다. 대만은 2002년에야 린 교수가 ‘린정이’인 것을 알고 ‘탈영 및 적진 투항죄’로 수배령을 내렸다. 린 부총재는 2002년 5월 부친 사망 직전 “임종을 보게 해 달라”고 대만 방문을 신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이후 매년 칭밍제(淸明節·한식)에는 성묘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의 대만행 여부는 양안 관계 진전에서 하나의 상징이자 시금석이 됐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