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사이클론 참사 1년… “아직도 복구중”

  •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이재민 50만명 천막촌 거주

곡창지대 ‘소금사막’ 변해
농민들 농사 포기 이중고
비바람 불면 “또 폭풍올라”
‘트라우마’ 증상 주민 많아

2008년 5월 2일 밤 미얀마 남서부 이라와디 지역. 비바람이 거세지는 가운데 잠을 청했던 주민들은 갑작스레 지붕 위를 덮친 바닷물에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시커먼 물 속으로 사람들이 휩쓸려가고 마을은 물바다가 됐다. 14만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이클론 나르기스의 재앙은 이렇게 시작됐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사망 8만4537명, 실종 5만3836명, 이재민 240만 명에 재산 피해액이 4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했다.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강타한 지 1년이 지났지만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이라와디 등 일부 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지 인터넷신문 팃사르의 한 기자는 지난달 30일 본보와의 전화에서 “이라와디 주민 상당수가 집도 없이 임시로 마련된 천막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천막촌에 거주하는 이재민은 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무너진 건물이나 다리가 방치돼 1년 전과 다름없는 곳도 많다”고 덧붙였다.

○ ‘소금사막’으로 변한 삶의 터전

동남아 최대 곡창지대 중 하나로 꼽히던 이라와디 삼각주 지역은 지난해 나르기스로 논밭이 바닷물에 잠긴 뒤 염분이 남아 ‘소금사막’으로 변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농민들은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게 돼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해안 지역에선 염전이 황폐화됐으며 어선, 어구 등을 잃은 어민들은 고기잡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재난지역 주민들이 빚에 허덕이며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최근 발표했다. 파종기인 6월 전에 이재민에 대한 추가 지원이 있어야 이들이 생업에 나설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미얀마의 농작물 수확량은 1년 전보다 32%나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제통신사 IPS뉴스는 특히 ‘물 부족’이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라와디 주민의 식수원인 우물과 연못은 바닷물이 유입된 뒤 소금기 때문에 이용할 수 없게 됐다. 빗물을 담던 큰 항아리도 당시 대부분 파손됐지만 많은 이재민들이 여전히 새 것을 장만하지 못했다. ○ 정신적 후유증 심각

나르기스로 가족과 재산을 잃은 이재민들의 정신적 후유증도 심각하다고 미얀마 반체제 월간지 ‘이라와디’ 인터넷판이 전했다. 대재앙에서 목숨을 건진 주민들은 수시로 하늘을 쳐다보면서 폭풍이 올까봐 전전긍긍한다. 매시간 라디오 기상예보를 듣는 이들도 늘었다.

피해지역인 카우흐무의 한 마을에선 지난달 초 인근 해역에서 사이클론 비질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짐을 챙겨 양곤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라우마’(큰 사고나 외상 후 생기는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이는 생존자도 많다. 한 소년은 나르기스로 부모와 할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된 뒤 비바람이 거세지면 작은 박스 안에 숨는 버릇이 생겼다고 잡지는 전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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