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새벽잠을 깨우는 전화들

  • 입력 2009년 4월 9일 18시 10분


"아이들이 곤히 잠자고 있는 새벽 3시, 백악관에 전화가 울린다. 세계에 긴박한 상황이 생겼다. 누가 그 전화를 받기를 원하는가."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 힐러리 클린턴 후보진영이 버락 오바마 후보의 외교안보 경험 미숙을 꼬집기 위해 내보낸 TV 광고다. 대선 막바지엔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오바마 취임 6개월 이내에 세계가 그를 시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이 씨가 된 걸까.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석 달도 안돼 심야 긴급상황에 잠을 깨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일요일이었던 5일 체코를 방문중이던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인해 오전 4시경(현지시간)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유엔 안보리 소집을 위한 외교작업을 지휘했다.

사흘만인 8일 새벽, 유럽 터키 이라크 방문을 마치고 갓 백악관에 돌아온 오바마 대통령은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미국 선박이 해적에 납치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해상안전 관련 기관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선원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으라"고 지시했다. 이날 이란에선 1월 31일부터 이란 당국에 억류중인 미국인 여기자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죄인 간첩혐의로 기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단 미국내에선 대통령이 차분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지만 이젠 단호하게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새벽 3시 광고' 직후 NBC방송 코미디 프로는 새벽 3시의 전화를 '의원 힐러리'가 받는 내용의 패러디를 내보냈다. '대통령 오바마'가 "이란이 핵무기를 강화했고 북한이 돕고 있는데 어쩌면 좋겠냐"며 자문을 구하려 전화를 건 것. 실제로 이번 북한 로켓 발사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역시 새벽잠을 깬 클린턴 국무장관과 긴밀히 대책을 협의했다고 백악관 대변인은 전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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