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탁신파가 태국청사 포위

  • 입력 2009년 4월 3일 03시 02분


지난해 반정부 시위대의 잇단 공공기관 점거로 홍역을 치렀던 태국 정치상황이 또다시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반정부 시위라는 점에선 지난해와 같지만 당시 붉은 옷을 입었던 친정부 단체는 반정부 시위대가 됐고, 노란 옷을 입었던 반정부 단체들은 친정부 단체로 바뀌었다.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를 지지하는 ‘독재저항민주주의연합전선(UDD)’은 지난달 26일부터 정부청사로 통하는 도로를 철조망과 폐타이어를 이용해 차단한 뒤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시위 8일째인 2일에는 정부청사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가 3만 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시위가 격화됨에 따라 정부 각료들과 공무원의 정부청사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시위대는 봉쇄를 풀라는 법원의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UDD는 8일 전국에서 100만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지난해 같은 유혈충돌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해외로 도피한 탁신 전 총리는 지난달 26일부터 닷새간 화상연설을 통해 정부청사 앞에 모인 자신의 지지자들을 독려했다. 그가 현재 어느 국가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태국 정부는 1일 탁신 전 총리의 화상연설을 차단하고 반정부 시위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에게 화해를 제의했다.

더욱이 10∼12일 파타야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어 태국 정부는 좌불안석이다. 수텝 트악수반 부총리는 “어디서든 탁신과 대화할 용의가 있으며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도피 중인 탁신 전 총리에게 대화를 요청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텝 부총리는 “그러나 탁신의 요구 사항 가운데 의회해산과 조기총선, 자신에 대한 사면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 UDD 지도부는 조기 총선 등 요구사항이 수용될 때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국이 악화되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31일 영국에 갔던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는 일정을 하루 앞당겨 10일 밤에 귀국할 예정이라고 현지 신문인 방콕포스트가 전했다.

태국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는 데는 최근 세계 경제침체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기업인 출신으로 경제 발전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던 탁신 전 총리에 대한 태국인들의 향수가 커지면서 시위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속출하는 실업자도 반정부 시위대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또 이번 반정부 시위의 배후엔 많은 기업인이 버티고 있어 시위대의 자금줄도 든든하다. 외신들은 반정부 시위로 올해 태국 경제성장률이 2%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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