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오바마 같은 아빠 되기

  • 입력 2009년 2월 13일 19시 39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년 전만 해도 대통령직에 대해 꿈도 꾸지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 오히려 그는 훌륭한 정치인보다는 좋은 아빠가 되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일리노이 주 하원의원이던 1999년 오바마는 언론의 관심을 많이 끌었던 반(反)범죄법안 처리 때 고향 하와이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휴가 도중 딸이 독감에 걸리자 휴가를 연장하기까지 했다. 비행기표를 보내줄 테니 돌아와 찬성표를 던져달라는 조지 라이언 일리노이 주지사의 부탁도 거절했다. 법안은 근소한 표차로 부결됐다. 오바마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렇지만 오바마가 평소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아버지인지 잘 드러나는 일화다.

교육현장에 아버지는 안 보인다

오바마는 지난해 대통령선거 기간 ‘아버지날’에 연설하면서 흑인 가장들을 향해 “너무나 많은 아버지가 가정에서 실종되거나 부재중”이라며 “아버지들이 남자가 아니라 소년처럼 행동하면서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핵심 지지층인 흑인과 진보 진영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예민한 내용이었다. 실제 이 연설 이후 오바마의 지지율은 하락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나는 정부가 할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 해도 우리가 삶에 대해 더 많은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면 충분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고 자녀가 숙제하는 걸 도와주십시오.”

아버지 없이 자란 고통을 겪은 그의 말이기에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오바마의 이런 생각과 행동에 대해 알게 됐을 때 가슴 뜨끔한 사람들이 미국의 흑인 가장만은 아닐 것 같다. ‘아버지의 일상적 부재’라면 한국만 한 나라가 없다. 양상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복잡하고 공고하지 않을까. 한국은 미국과 달리 아버지는 돈 벌어오고, 엄마는 (맞벌이라 하더라도) 애 키우고 살림을 책임지는 구조다. 아이들 성적이 떨어지면 남편이 아내를 나무라며 부부싸움을 하는 나라다.

오바마는 주로 흑인 아버지들의 가족부양 책임을 강조했지만 한국 아버지들의 문제는 가족을 부양하는 것으로 가정과 자식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아이들의 일기나 숙제에 그려지는 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거나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다. 과제물 챙기기나 학교 행사에 아버지가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보건복지가족부 학부모 저녁모임 지원사업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 아이를 둔 아버지의 절반 이상과 중고교생 아버지의 80%가 자녀의 학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아버지의 부재가 가져오는 교육의 폐해는 심각하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굴고, 학교나 가정에서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것은 엄마가 자녀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것과 상관관계가 깊다고 많은 학자는 보고 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엄마가 뭐든 받아주다 보니 집단이나 단체생활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원칙도 익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학교가 저녁에 학부모 초청해야

아버지들이 ‘누구는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느냐, 억울하다’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동감한다. 한국 아버지들은 치열한 경쟁구조 속에서 ‘회사인간’이 되기를 요구하는 사회에 의해 교육현장에서 배제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부재’에 언제까지나 무신경할 수는 없다. 최근 ‘육아는 권리’라며 적극적으로 육아와 교육에 참여하는 젊은 아빠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제도적인 뒷받침이 커지지 않으면 이런 개별적 움직임이 거대한 물결로 나타나기는 어렵다. 새 학기를 앞두고 자녀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외국처럼 학부모 모임을 퇴근 시간 이후인 저녁에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지난해 시범사업 결과 부모와 교사 모두의 만족도가 높았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오바마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면 자녀의 학교부터 방문해 볼 일이다. 교사가 깜짝 놀라며 당신 자녀에게 관심을 보일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