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2월 5일 02시 4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에 포로로 잡힌 미군 대령 트로트먼(리처드 크레나)은 소련군 지휘관에게 이렇게 외친다. 설 연휴 때 TV에서 본 영화 ‘람보3’의 한 장면이다.
197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소련군에 대항하는 반군 무자헤딘에 스팅어미사일 등 각종 무기를 제공했다. 1988년 개봉한 이 영화 속의 트로트먼 대령은 비밀리에 무자헤딘을 지원하러 갔다가 소련군에 붙잡힌 것. 영화에서 아프간인들은 소련군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민족으로 묘사된다.
영화가 개봉된 지 10여 년이 지난 2001년 10월 7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다.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그해 9·11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 일당을 비호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더는 미국 매체에서 아프간 사람들이 강인한 민족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미제 무기를 지원했던 나라를 다시 미제 무기로 공격하는 데서 미국의 제국적 속성은 단적으로 드러난다. 중앙아시아에서의 소련 팽창을 우려해 무기를 지원했던 아프가니스탄이 자국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자 즉각 응징에 나선 것이다. ‘제국주의는 영광을 추구하기 위해서보다는 자국이 완전무결하게 안전해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추진되기 때문이다.’(로버트 캐플런 ‘제국의 최전선’·원제 ‘Imperial Grunts’)
미 국방부의 관할 지도를 들여다보면 미국이 유일무이한 현대의 제국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펜타곤 지도는 전 지구를 북부, 남부, 중부, 유럽, 태평양 등 5개 사령부 관할로 나누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몽골 호주 뉴질랜드 등은 태평양사령부 관할이다. 이런 미국이 세계 금융위기의 진앙이 되자 세계의 일부 지식인 사이에서 ‘미국이 제국의 자격을 잃었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끝나가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해 대선에서 젊은 흑인 대통령을 뽑아 아직 유연성을 잃지 않았음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아직도 미국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이 그 해답이다.” 오바마의 당선 연설에 세계는 감동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럽과 제3세계 등에서 ‘소수자 출신이자 인종 간, 지역 간, 계층 간 화합의 상징인 오바마 대통령 시대에는 미국식 제국주의와 일방주의(Unilateralism)가 크게 완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과연 그럴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 미국의 제국주의는 자국의 안전추구라는, 국가 유지를 위한 기본적 요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보호무역주의의 선봉에 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미국의 보호주의는 되고, 다른 나라는 안 된다는 얘기다.
불공평하다고? 맞다. 불공평하다.
그러나 이라크에서만 4000여 명의 미군이 전사했지만, 아직도 세계 어딘가에서 24시간 전쟁 중인 제국과 용산 참사로 6명이 희생되자 휘청거리는 나라가 공평할 순 없다.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난하거나 오바마 대통령에게 섣부른 기대를 걸기에 앞서 우리가 미국인만큼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지 자문하는 게 순서다.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