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명문대들, 아시아계엔 더 엄격한 잣대”

  • 입력 2008년 6월 14일 03시 01분


美정부 ‘대입 괴담’ 조사 착수

"한국 중국 등 아시아계 출신이 미국 명문대 입학에 가장 불리하다."

미국 내 한인 학부모와 입시 관계자들 사이에 '정설(定說)'처럼 떠도는 소문이다. '대학들은 인종별로 골고루 학생이 분포되길 원하는데 아시아계에 공부 잘하는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아 아시아계에 훨씬 높은 잣대가 적용된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미국에서 교육받은 아시아계 미국 학생으로 분류되는 것 보다는 외국 고교 출신 유학생 자격으로 지원하는 게 유리하다"며 고교 때 한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도 있다. 통상 미국 대학들은 9학년(한국의 중학3년)을 전후해서부터 미국 학교를 다녔으면 미국 학생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미 명문대의 입학사정에서 아시아계가 불이익을 받는지 여부를 밝혀줄 조사가 진행된다.

미 교육부 민권국은 12일 프린스턴대가 입학 사정 때 아시아계를 차별했는지에 대한 전면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2006학년도 입시(그해 가을 입학)에 탈락한 중국계 지안 리 씨의 이의제기에 따른 것이다.

4세 때 미국에 이민 온 리 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은 만점, SAT II는 2390점, 고교 내신은 상위 1%였는데 대기자 명단에 올랐다가 불합격 처리됐다.

자원봉사 경력, 리더십 등 다양한 면모를 측정하는 미국 명문대 입시에서 SAT 등 시험 점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학마다 다르며, 어느 요인이 얼마만큼 비중을 차지하는 지는 누구도 명확히 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뉴저지 주 리빙스턴의 고교 출신인 리 씨는 "나보다 성적이 낮은 같은 학교 백인 학생은 합격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당시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에도 원서를 냈다가 떨어졌다. 그는 예일대, 캘리포티아공대 등에 합격했고 예일대에 입학했다가 하버드대로 편입했다.

리 씨가 자신을 불합격시킨 대학들 가운데 프린스턴대만을 상대로 이의를 제기한 이유는 명확치 않다. 지난해 11월 월스트리트저널은 리 씨의 사연을 보도하면서 2004년에 프린스턴대 내부에서 '다른 자격 조건이 같은 것을 전제로 아시아계 미국인은 다른 인종 출신보다 SAT 성적이 50점은 더 높아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온데 영향을 받아 리 씨가 프린스턴대에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교육부는 당초 리 씨의 이의제기를 기각했으나, 전면 조사로 방침을 바꿔 프린스턴대의 2006학년도 입시자료를 건네받았다.

교육부 짐 브래드쇼 대변인은 "이번 조사는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 수혜를 받는 교육프로그램에서 인종적 차별 금지'를 명시한 민권법 제 5조에 따라 이뤄진다"며 "하지만 프린스턴대가 어떤 차별을 했다는 의혹이나 예단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철저히 중립적인 상태에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등교육 인사이더'의 스캇 제식 편집인은 프린스턴대 학내 신문인 데일리프린스턴과의 인터뷰에서 "조사확대는 교육부가 리 씨의 불만제기가 하찮은 게 아니라고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전면 조사에 대해 프린스턴대 클래스 클랏 대변인은 "우리의 입학사정 정책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클랏 대변인은 데일리 프린스턴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입학사정 정책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입학 사정에서 고정으로 '할당'된 요인은 없다"며 "그러나 인종도 결정 과정의 한 구성요소"라고 말했다.

이 대학 재닛 레이플라이 입학 담당 학장은 "당시 리 씨의 지원서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으며 (봉사 등) 외부활동 경력이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프린스턴대는 2006학년도 입시에 1만7564명이 지원해 1231명이 합격했으며 14%가 아시아계 미국인이고 44%가 소수계 출신이라고 밝혔다. 대학 측은 또 SAT 만점자 중에서도 절반은 탈락했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추산에 따르면 미국 내 아시아계 인구는 4.5%지만 이들의 명문대 입학 비율은 10~30%에 달한다.

앞서 미 연방정부는 1992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이 아시아계 지원자끼리만 상대평가를 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후 대학 측은 그 같은 정책을 폐기했다. 이 대학 전체의 아시아계 합격률은 1997년 34%에서 2007년 42%로 늘어났다.

연방정부는 1990년엔 하버드대가 아시아계 학생을 '조용하고 수줍음 많으며 수학과 과학을 선호한다'고 규정했으며, (그런 범주화의 결과) 상대적으로 성적이 우수함에도 백인보다 덜 합격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에선 '소수계 우대·차별철폐 정책(affirmative action)'이 상대적으로 성적이 낮은 흑인과 히스패닉에게만 특혜를 주고 아시아계와 백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역차별 논란'이 제기돼 왔다. 미시간 시를 비롯한 상당수 자치단체는 주민투표로 대학입학에서 소수계 우대정책 적용을 금지시켰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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