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라면…” 보수의 변심

  • 입력 2008년 6월 12일 03시 04분


‘오바마콘’(Obama+conservative) 美대선 새 변수

《“만약 민주당 후보가 힐러리였다면 이런 고민은 안했을 겁니다. 아무리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을 바란다 해도 ‘클린턴 집안’에 표를 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오바마는 뭔가 달라 보입니다.” 미국 미시시피 주 출신으로 현재 버지니아 주 프린스윌리엄 카운티에서 가구점을 하는 윌리엄 버셋(45) 씨는 골수 공화당 집안에서 자랐다. 한 번도 민주당에 표를 준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최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버셋 씨는 9일 “지난주(5일) 집 근처에서 열린 오바마 연설회에 가 봤는데 말을 신중하게 해서 그런지 ‘얌체같이 눈앞의 열매에만 매달리는 리버럴(진보적 자유주의자)’이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요즘 미국에선 버셋 씨 같은 경우를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는 보수주의자(conservative)’를 뜻하는 ‘오바마콘’이라 부른다. 감세, 작은 정부 등 핵심 가치에선 여전히 공화당을 지지하지만 이라크전쟁에 관한 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 생각이 다른 보수주의자들이다.

네오콘(신보수주의) 이론가였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 등에서 “공화당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거대한 오류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아주 내키는 건 아니지만 오바마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앤드루 베이스비치 보스턴대 교수는 격주간지 ‘아메리칸 컨서버티브’에 “미국 보수파의 재건은 이라크 철군에 달려 있다. 오바마가 필요하다”고 썼다. 보수파 잡지 ‘내셔널 리뷰’ 수석편집인을 지낸 ‘미국 보수파 정신의 형성’의 저자 제프리 하트 씨도 ‘오바마콘’에 합류했다.

‘오바마콘’의 분포를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는 아직 없지만 인터넷에는 ‘오바마콘’임을 선언하는 글이 숱하게 떠 있다.

블로거 도로시 킹것 씨는 “나는 증세에 반대하며 자유무역과 세계화, (강간범을 격퇴하기 위해) 총기 소유를 지지한다. ‘섹스 앤드 더 시티’류의 자유연애를 혐오한다. 하지만 이젠 내 세금이 이라크 대신 미국 경제와 미국인의 복지를 위해 쓰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오바마콘’을 만드는 제1차 요인은 이라크전쟁이지만 정치인 오바마 후보의 특질도 큰 몫을 한다.

‘아메리칸 컨서버티브’의 편집인을 지낸 윅 앨리슨 씨는 애틀랜틱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언사는 신중하고 사려 깊다. 무조건 깎아내리는 기존 정치인과 대비된다”며 “그의 인생 스토리는 보수주의의 진정한 가치와 맥이 닿는다”고 주장했다.

보수파 논객 저스틴 레이먼도 씨는 최근 ‘위대한 초월자’란 제목의 글에서 “오바마는 인종뿐만 아니라 좌우, 레드-블루(공화당 대 민주당) 간의 패러다임을 다시 배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요인은 보수주의 내 이념적 분할 현상이다.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는 보수파 내에서도 낙태, 동성애 등 사회적 가치에는 유연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법무부 법률위원장을 지낸 정통 보수파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더글러스 크믹 씨는 올해 초 오바마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자 한 신부가 미사에서 ‘낙태 지지자를 지지하는 것은 도덕적 죄악’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영성체 주기를 거부해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오바마 후보의 ‘오바마콘’ 흡인력에 맞서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와 히스패닉 유권자를 끌어당기고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민주 부통령 후보 전직 군장성 가능성”▼

군-외교 경험 전무한 오바마 단점 보완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자가 11월 대통령 선거에 내세울 부통령 후보는 전직 군 장성 중 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10일 AP통신이 보도했다.

AP통신은 이날 민주당 부통령 인선위원회와 부통령 후보 선정을 논의한 켄트 콘래드, 바이런 도건 상원의원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전하며 “오바마 후보가 군복무를 하지 않았고 외교안보 분야 경험이 부족한 점과, 공화당 대선 후보 내정자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전쟁영웅’ 출신인 점을 고려해 이런 논의가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콘래드 상원의원은 “미국민들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20여 명의 러닝메이트 후보에 대해 선정위원들과 토론했으며 이 중에는 전직 고위 군 장성들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미국 언론들은 제임스 존스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령관이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밖에 오바마 캠프 고문으로 활동 중인 토니 맥피크 전 공군참모총장, 스콧 그레이션 예비역 소장,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리처드 댄지그 씨 등이 물망에 오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포기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측 인사인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 사령관, 헨리 휴 셸턴 전 합참의장 등도 ‘당내 화합 차원’에서 후보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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