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곤혹’

  • 입력 2008년 3월 21일 02시 58분


영부인 시절 일과 공개… 업적 뻥튀기 논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경륜'을 내세우는데 실제 영부인 시절에 외교 등 국가경영에 어느 정도 관여한 걸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개정이나 철폐를 공약하고 있는데 영부인 시절엔 어땠을까?' '르윈스키 스캔들 같은 시련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미국 대통령선거 민주당 경선주자인 힐러리 후보의 영부인 시절 일과를 기록한 일정표가 19일 공개됐다.

미 국립문서보관서와 클린턴대통령도서관은 총 1만1046쪽에 달하는 2888일간의 일정 기록을 스캔해 웹사이트(http://www.clintonlibrary.gov/hrcschedules.html)에 띄웠다.

미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힐러리 후보의 백악관 시절 일정표 공개를 요구해왔으나 도서관 측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초 공표한 대통령 명령에 근거해 이를 거절해왔다. 그러자 '사법감시'라는 시민단체가 지난해 여름 소송을 제기하는 등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져왔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기록은 총 4400곳에 걸쳐 이름이나 전화번호가 지워져 있다. 도서관 측은 규정에 따라 제3자의 개인적 정보를 지웠다고 밝혔다.

▽'제2의 대통령에서 그냥 영부인으로'= 영부인 힐러리 여사가 1993년 백악관 입성 직후 면담한 사람들의 명단을 보면 로버트 루빈(백악관경제보좌관), 앨런 그린스펀(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등 공적인 인사들과의 만남으로 빡빡하게 차 있다.

'사법감시'의 톰 피톤 총재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마치 대통령 본인의 일정을 보는 듯하다"며 "그러나 힐러리 여사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건강보험개혁 작업이 무산된뒤엔 학교, 고아원 방문 등 여느 영부인과 다를 바 없는 일정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힐러리 여사는 8년간 총 80개 국을 방문했으나 실제 정책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판단하기 힘들다는게 미 언론들의 평가다. 일부에선 "공개된 영부인의 일일 일정은 일상적인 여행과 병원 방문, 블리니 팬케이크를 곁들인 캐비어(상어알)가 차려진 식사일정이 대부분이었다"(ABC 뉴스)는 혹평도 나왔다.

미국이 세르비아에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을때 영부인은 이집트의 문화재를 방문하고 있었으며, 클린턴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의 알카에다 훈련기지에 대한 공격을 공표했을 때 영부인은 휴가지에 있었다는 것.

힐러리 후보는 2003년 펴낸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에서 중국에서 1995년 9월 여권에 관해 연설하기전 국가 정보기관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았다고 썼는데 이날 공개된 일정표엔 그런 기록은 없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힐러리 캠프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힐러리 후보가 영부인 시절 건강보험 아동복지 입양 교육 참전용사 중소기업 국제개발 여권 등 다방면에 걸쳐 실질적인 활동을 했음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후보 캠프는 "힐러리 후보가 선거운동에서 말해온 것과 다른 대목이 너무 많다"며 한 예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관련 일정들을 지적했다.

힐러리 여사는 미 의회가 NAFTA를 표결하기 직전인 1993년 11월 10일 120명이 참석한 백악관의 비공개 나프타 브리핑에 참석해 연설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연설 내용은 기록돼 있지 않지만 모임의 성격상 지지 연설일 수 밖에 없다는게 미 언론들의 분석이다.

▽남편이 외도하던 시간에=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의 한 욕실에서 인턴직원인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특별검사 보고서가 적시한 날짜인 1997년 2월 28일.

힐러리 여사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7시반까지는 백악관에서 4차례의 간단한 공식 모임에 참석했다. 저녁 일정으로는 워싱턴 시내에서 4개의 문화행사가 기록돼 있는데 실제 참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특별검사 보고서에는 클린턴 대통령은 그날 밤 라디오 주례연설을 녹음하고 이른 저녁에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에앞서 르윈스키가 클린턴 대통령과 첫 '친밀한 접촉'을 가졌다고 주장한 1995년 11월 15일 영부인은 백악관에서 노벨상 수상가족을 접견했다. 르윈스키가 클린턴 대통령과 '친밀한 접촉'을 가졌다고 주장한 날들 가운데 두차례는 힐러리 여사가 외국 여행중인 때였다.

르윈스키 스캔들이 공표된 1998년 1월 21일 저녁 영부인은 백악관을 떠나 누군가와 논의를 했다. 다음날엔 백악관에서 30분간 사적인 미팅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부적절한 관계를 국민들에게 시인한 1998년 4월 17일의 백악관 일정표는 '아무런 공식 일정 없음'이라고만 쓰여 있으며 다음날 클린턴 부부는 딸과 함께 예정된 휴가를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원이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1998년 12월 19일 클린턴 대통령 부부는 백악관 정원에서 500명의 손님을 초청해 만찬을 즐겼고 식사후 '퍼스트 댄스'를 했다고 기록돼 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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